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44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20장 1~7절 — 아브라함이 그랄에 머물며 아내 사라를 누이라 하였고,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데려갑니다. 그날 밤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 “그는 남의 아내니라” 하시고, 동시에 아브라함을 두고 “그는 선지자라”고 하십니다.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먼저 우리가 아는 아브라함을 세워 놓으십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사람, 백 살에 얻은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말도 안 되는 명령에도 순종하려 했던 사람. 그런데 그 대목에서 목사님은 은혜만 받는 게 아니라 절망감도 느낀다고 솔직히 말씀하십니다. “저는 못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못 합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입니다.” 차라리 하나님, 저를 데려가십시오 하고 버티지 그 말씀엔 순종 못 한다고요.
그런데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은 다릅니다. 아내가 예뻐서 자기가 죽을까 봐 아내를 누이라고 둘러대는, 연약하고 비겁하고 초라하고 구차한 사람입니다. 목사님은 여기서 오히려 더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왜 굳이 기록하지 않아도 될 이 부끄러운 장면을 남기셨을까. 아브라함을 망신 주려고?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너희와 다른 사람 아니야, 똑같아” — 이것이 이 본문에 담긴 하나님의 메시지라는 겁니다.
여기에 사탄의 교묘한 속임수가 있다고 하십니다. 너하고 아브라함은 종자가 다르니 꿈도 꾸지 말아라, 밤낮 넘어지는 너를 하나님이 버려도 벌써 버렸다 — 이 생각을 은연중에 심어 준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는 이유는 우리 믿음이 늘 좋아서도, 행실이 늘 근사해서도 아닙니다.
아토피가 심했던 막내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수능 성적이 좋지 않자 아이가 “아빠, 제가 부끄러우시지요”라는 메일을 보냈고, 목사님은 곧장 답장하셨습니다. “공부 잘하면 내 새끼고 공부 좀 못 하면 남의 새끼냐? 그렇게 부끄러워한다면 그건 애비가 부끄러운 거야.” 자식이기 때문에 지킨다는 것. 넘어지면 일어나고 실수하면 회개하며,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라는 믿음의 끈만 놓지 않으면 하나님은 절대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내게 남은 것
일터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실패 자체가 아니라, 실패한 뒤에 올라오는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는 목소리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 목소리의 정체를 정확히 짚습니다 — 그건 자기 성찰이 아니라 속임수라는 것. 아브라함도 겁이 나서 거짓말을 했고, 그러고도 하나님은 그를 “선지자”라 부르셨습니다. 성과가 좋을 때만 내가 나인 게 아닙니다. 오늘 형편없는 결과표를 들고 있어도, 붙잡은 손만 놓지 않으면 내일 다시 일어설 자리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넘어진 자리에서 저를 정죄하는 목소리 대신, 저를 자식이라 부르시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 His CCM 기도 피아노 (24시간 라디오): https://www.youtube.com/live/9STrfMdNiws
- 앨범 «Grace Piano Prayer»: https://open.spotify.com/artist/6HOuDJojMSQHSHzIOt83sn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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