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기새 김동호 #2232 — 심판은 세상을 살리는 또 하나의

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32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18장 16~21절 —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하나님이 곧이어 발걸음을 옮기신 곳은 소돔과 고모라였습니다. “그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보고 알려 하노라.”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본인의 폐암 수술 이야기로 문을 여십니다. 왼쪽 폐 절반을 절제했기에 지금까지 살아 계실 수 있었다는 것. 의사는 함부로 칼을 대지 않지만, 수술해야 할 때가 오면 때를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잘라냅니다. 그 수술이 곧 치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그렇습니다. 심판의 목적은 구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도려내지 않으면 세상 전체가 그렇게 오염되고 멸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만 붙듭니다. 심판은 잘 믿지 않습니다. “설마 하나님이 진짜로 심판하실까, 그냥 호랑이 온다 순경 온다 하시는 거겠지.” 그러나 심판이 없다면 하나님은 공정하신 분이 아니시고, 심판이 없다면 하나님의 뜻과 식과 법대로 살아야 할 동기 자체가 사라진다고 목사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복을, 소돔과 고모라에게는 합당한 심판을 — 그 공의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의 최대 어리석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사람은 죄에 대해 담대해지고, 죄를 점점 키워 갑니다. 어리석음의 반대는 지혜이고,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쥐도 새도 모른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랍니다 — 쥐와 새만 모릅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매에게 쫓기다 머리만 숲에 처박고 몸은 다 드러낸 꿩처럼, 우리 눈에 하나님이 안 보이니 하나님도 우리를 못 보실 거라 착각합니다.

요셉이 그 지혜를 가졌습니다. 아무도 모른다는 유혹 앞에서 그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십니다.” 요셉이라고 유혹이 없었겠느냐고, 다만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믿음이 그를 지켜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의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고백이 십자가 고백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자녀에게 남기고 싶은 가훈 중 하나가 “죄를 무서워하라” 라고 말씀하시며 맺으십니다.

내게 남은 것

일하는 자리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이건 아무도 모른다”고 계산이 서는 순간입니다. 숫자 하나, 보고 한 줄, 확인 안 할 것 같은 절차 하나. 그때 나를 붙드는 건 의지력이 아니라 보고 계신 분이 있다는 감각이라는 것을 오늘 배웁니다. 죄 유혹은 내 힘으로 못 이깁니다. 다만 하나님이 보시고, 때가 되면 정확하게 수술하시는 분이라는 두려움이 나를 지혜롭게 만듭니다. 그 두려움은 나를 위축시키는 게 아니라 살리려는 칼입니다.

오늘의 기도: 아무도 모른다고 느껴지는 그 자리에서, 보고 계신 하나님을 먼저 기억하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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