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34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18장 22~26절 — 소돔으로 향하는 그 사람들 뒤에서,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서서 묻습니다. “의인 오십 명이 있어도 멸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오십에서 시작해 열 명까지,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겠다고 대답하십니다.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이 대화 앞에서 먼저 걸리는 지점을 짚으십니다. 구원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 아닌가. 에스겔 18장은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을 다시는 쓰지 못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아비의 죄로 자식이 벌받는 일도, 아비의 믿음으로 자식이 구원받는 일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의인 열 명 때문에 온 성이 용서받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목사님의 답은 ‘대신 죄사함’이 아니라 영향력입니다. 의인의 삶은 세상을 비추는 빛의 삶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사람이 열 명만 있었어도, 그 성은 심판받을 만큼 어두워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여기서 윤동주의 「초 한 대」가 나옵니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몸, 생명이라곤 심지 하나뿐인 초. 그런데 그 심지에 불이 붙자 절대 물러날 것 같지 않던 암흑이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 창구멍으로 달아납니다. 우리는 악의 힘은 무서워하면서 의의 힘은 우습게 봅니다. 의를 염소 갈비뼈 정도로만 아는 것입니다. 하지만 거기 하나님의 말씀으로 불을 켜면 그 빛은 돈으로도 칼로도 폭탄으로도 끌 수 없습니다.
주일학교 때 부르던 찬송 이야기도 마음에 남습니다. “이 작은 나의 빛 비치게 할 테야.” 빛’나리’가 아니라 빛’내리’입니다. 그냥 빛나는 게 아니라 내가 세상을 비추게 하겠다는 것. 그리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 5천 명 앞에서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했던 그것으로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지금 세상이 아직 심판받지 않고 이어져 온 것도, 그때마다 어딘가 숨어 있던 의인 열 명 때문일 거라고 목사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게 남은 것
일터에서 제일 자주 하는 자기변명이 “나 하나 바르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입니다. 관행이 그렇고, 다들 그렇게 하고, 나만 원칙을 지키면 손해라는 계산. 오늘 말씀은 그 계산이 틀렸다고 합니다. 나 하나 정직한 것이 염소 갈비뼈처럼 하찮아 보여도, 거기 불이 붙으면 방 전체의 어둠이 도망갑니다. 회의실에서 혼자 다른 말을 하는 그 한 사람, 숫자를 정직하게 적는 그 한 사람이 조직의 밝기를 바꿉니다. 의인 열 명이 되겠다는 거창한 결심 말고, 오늘 그 열 명 중 한 명이 되는 것부터.
오늘의 기도: 내 작은 정직을 우습게 여기지 않게 하시고, 오늘 있는 자리에서 빛을 내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 His CCM 기도 피아노 (24시간 라디오): https://www.youtube.com/live/9STrfMdNiws
- 앨범 «Grace Piano Prayer»: https://open.spotify.com/artist/6HOuDJojMSQHSHzIOt83sn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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