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43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19장 31~33절 — 소돔과 고모라가 무너진 뒤, 롯의 두 딸이 말합니다.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으니.” 그리고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합니다. 아버지는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동양의 도(道)와 서양의 철학 이야기로 시작하십니다. 동양은 사람답게 사는 길을 닦았고, 서양은 삶의 이치인 진리를 찾았습니다. 수학 문제도 식을 알면 풀리듯, 진리는 삶의 문제를 풀어내는 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습니다. 동양이 찾던 길, 서양이 찾던 진리가 그분 안에 있다는 선언입니다.
옛 서당은 법도와 예를, 곧 삶의 도리를 먼저 가르쳤습니다. 지금 우리 교육은 유리함만 좇습니다. 논어의 “군자는 의를 생각하고 소인은 이를 생각한다”는 구절이 여기서 갈라집니다. 군자는 의로우면 손해가 나도 하고, 소인은 유리하면 불의한 일도 합니다. 목사님은 묻습니다. 주식이 얼마나 올랐나만 생각하며 “정의가 밥 먹여 주냐” 하는 이 세상은 군자의 세상입니까, 소인의 세상입니까.
아브라함과 롯이 딱 그 두 사람입니다. 삼촌이 먼저 택하라 했을 때 롯은 사양 한 번 없이 눈에 좋아 보이는 소돔을 골랐습니다. 그 땅이 성적으로 타락했는지, 하나님 앞에 범죄한 도시인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유리함만 보였으니까요. 결과는 어땠습니까. 소돔은 멸망했고, 롯은 이익은 고사하고 본전까지 다 날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 “도리를 좇아서는 배필을 구할 수 없다.” 도리를 버리고 살았더니 이제는 도리를 좇아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그 말씀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 근본이 되는 도리를 먼저 세우면 지엽인 이익은 따라옵니다. 그러나 이익을 앞세우면 도리는 결코 이익을 따라오지 않습니다. 목사님은 배우자 선택을 예로 드십니다. 어느 대학, 어느 회사, 경제적 안정을 먼저 보고 “믿음은 나중에 전도하면 되지” 하는 것 — 순서가 바뀐 것이고, 그래서 실패가 그렇게 많다는 것입니다. 유리함을 좇는 게 죄는 아닙니다. 순서의 문제입니다.
내게 남은 것
일할 때 나는 늘 “이게 유리한가”를 먼저 계산합니다. 조건표를 먼저 펴고, 사람됨과 정의는 그 다음 칸에 적습니다. 목사님도 “저를 포함해서 우리는 대개 롯의 선택을 하며 사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그 솔직함이 오히려 아프게 남았습니다. 롯이 망한 이유는 계산을 못해서가 아니라 계산을 먼저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결정 앞에서 순서만이라도 바꿔보려 합니다. 도리를 먼저 놓고, 유리함은 그 다음 칸에. 덧붙여, 어제 원고를 못 쓰고 뒤척이다 새벽 2시에 일어나 성경을 읽고 또 읽으며 오늘 설교를 “진주 찾듯” 찾아내셨다는 고백 — 여든 넘은 분의 그 새벽이, 내가 내 일을 대하는 태도를 조용히 나무랐습니다.
오늘의 기도: 유리함을 계산하기 전에 도리를 먼저 묻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 His CCM 기도 피아노 (24시간 라디오): https://www.youtube.com/live/9STrfMdNiws
- 앨범 «Grace Piano Prayer»: https://open.spotify.com/artist/6HOuDJojMSQHSHzIOt83sn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