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36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19장 4~8절 —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몰려와 롯의 집을 에워쌉니다. 롯은 손님들을 지키려고 문 밖으로 나가 문을 닫지만, 그가 내놓은 제안이 오늘의 충격입니다.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지난번 “의인 열 명” 이야기를 이어받으십니다. 구원과 심판은 개인적인 것이라 연좌제처럼 덩달아 구원받거나 벌받는 일은 성경의 가치관이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의인 열 명의 뜻은 무엇인가 — 예수님이 말씀하신 “너희는 세상의 빛”으로 풀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빛이 있으면 세상이 밝아지고, 밝아진 도시는 심판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문제는 그 반대편입니다. 우리가 빛이 되지 못하면 그냥 제자리에 머무는 게 아니라, 세상의 어둠이 우리를 어둡게 만듭니다. 목사님이 롯의 이야기에서 도무지 납득이 안 갔다는 대목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천사를 보호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어떻게 아버지가 처녀 딸을 무리에게 “너희 눈에 좋을 대로 하라”며 내어줄 수 있는가. 목사님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 롯이 이미 무뎌진 것입니다. 성적으로 문란한 도시에서 그런 일이 큰 수치도 부끄러움도 되지 않는 문화에 물들어, 딸의 일마저 “그럴 수도 있는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신학교 시절 읽은 책의 한 문장이 오늘의 열쇠로 등장합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숫자가 작았지만 온도계가 아니라 자동 온도조절장치였다는 말. 온도계는 지금 몇 도인지 가리킬 뿐 온도를 바꾸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도 그랬습니다.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학교를 세우고 여성을 일깨우고 반상 문화를 철폐했고, 예수 믿는 사람은 정직하고 반듯하다는 평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온도계 역할조차 못 하고, 세상이 교회를 가르치려 하고 앞질러 가는 시대가 되었다고 부끄러워하십니다. 힘은 우리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빛이니, 말씀대로 살려고 발버둥 치면 알게 모르게 빛이 난다는 말씀으로 맺으십니다.
내게 남은 것
무서운 건 롯이 나쁜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보다, 그 결정을 아무렇지 않게 내렸다는 사실입니다. 일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엔 불편했던 관행이 반년쯤 지나면 “원래 그런 거지”가 되고, 그때부터는 판단 자체가 사라집니다. 나는 지금 이 조직의 온도를 바꾸고 있는가, 아니면 온도를 읽어주기만 하는 온도계인가, 그마저도 못하고 그냥 그 온도에 맞춰 데워진 물인가. 무감각해진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 오늘의 숙제입니다.
오늘의 기도: 세상의 온도에 길들지 말고, 그 온도를 바꾸는 자리에 서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 His CCM 기도 피아노 (24시간 라디오): https://www.youtube.com/live/9STrfMdNiws
- 앨범 «Grace Piano Prayer»: https://open.spotify.com/artist/6HOuDJojMSQHSHzIOt83sn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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