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35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19장 1~3절 — 소돔 성문에 앉아 있던 롯이 두 천사를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집으로 모십니다. 천사들이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하는데도 롯은 간청해 기어이 집으로 들이고,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굽습니다.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이 설교를 세 번이나 다시 녹화했다고 고백하며 시작하십니다. 오해받을 수 있고 비난받을 수 있는 주제라 많이 망설였지만, 중요한 성경적 가치라 용기를 내셨다고요. 주제는 이것입니다. 마구간은 훌륭한 것이 아니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방에서 아기를 낳으려고 애타게 방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를 보고도 방을 내주지 않았고, 그래서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목사님은 말씀하십니다 — 예수님은 왕궁에서 태어나셨어도 겸손하신 분이라고.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에 겸손한 것이 아니라고. 그런데 사람은 자기를 합리화하는 데 재능이 있어서, 자신의 인색함과 강퍅함은 감추고 “예수님이 겸손하셔서 마구간에서 나신 것”으로 미화해 버립니다. 그러고는 그 왜곡된 기준으로 남을 마구간으로 몰아넣습니다.
동방박사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그 증거입니다. 마구간 자체가 미덕이라면 그 예물은 거절하셨어야 앞뒤가 맞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형편이 그러하니 마구간에서 나셨고, 예물이 오니 그것도 받으셨습니다. 목사님은 청빈과 ‘빈청’을 구분하십니다. 부한데도 욕심 부리지 않고 깨끗하게 살려다 가난해진 것은 훌륭하지만, 가난 그 자체를 훌륭함으로 치부하면 사회가 건강해지지 못하고 생사람을 잡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가치는 부함이나 비천함 자체에 있지 않고, 비천한 데 처할 줄 알고 부한 데도 처할 줄 아는 믿음의 능력에 있습니다.
그리고 롯입니다. 노숙하겠다는 천사들을 강권해 집으로 모시고, 발을 씻기고 상을 차린 사람. 방을 내주지 않아 임산부를 마구간으로 보낸 사람들과 정확히 반대편에 선 자세입니다. 목사님의 기도는 이것이었습니다 — 하나님께나 사람에게나 인색하지 않고 강퍅하지 않은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내게 남은 것
일하는 자리에서도 이 왜곡은 흔합니다.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면 “사명감이 없다”고 하고, 열악한 조건을 견디는 것을 미덕으로 포장하는 분위기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 미화가 사실은 내주지 않은 쪽의 자기합리화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남의 마구간을 훌륭하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내줄 수 있었던 방을 내주지 않은 건 아닌지 먼저 물어야겠습니다. 가난도 부함도 그 자체로는 가치가 아니고, 어느 형편에서든 인색하지 않은 태도가 가치라는 것.
오늘의 기도: 남의 결핍을 미화하기 전에, 내가 내줄 방부터 열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 His CCM 기도 피아노 (24시간 라디오): https://www.youtube.com/live/9STrfMdNiws
- 앨범 «Grace Piano Prayer»: https://open.spotify.com/artist/6HOuDJojMSQHSHzIOt83sn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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