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74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35장 9~15절 — 밧단아람에서 돌아온 야곱에게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복을 주시고, 그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며 생육과 번성, 민족과 왕들, 그리고 땅을 약속하십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던 그곳에 기둥을 세우고 전제물을 붓고 기름을 부은 뒤, 그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습니다.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서 시작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기쁘고 감사하며 잘 사는 것이라는 겁니다. 다만 목사님은 ‘잘 사는 것’과 ‘부자로 사는 것’을 분명히 구분하십니다. 돈 많은 사람은 부자라고 부르지 잘 사는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지 못 사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고요. 가난해도 잘 사는 사람이 있고, 부자인데도 못 사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복에 세상에서 말하는 물질과 건강과 형통이 전혀 없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축복 속에는 잘 사는 것과 부유한 것과 건강한 것과 형통한 것이 다 포함된, 그런 전인적이고 완전한 모습이라는 것이 목사님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정리를 하나 하십니다. 이 세상의 고난과 역경과 어려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기보다 우리의 죄, 그리고 죄로 타락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 하나님이 창조하신 처음 세상 에덴동산에는 그런 것이 없었잖아요. 물론 예외적으로 우리를 연단하고 훈련하시기 위해 광야로 보내실 때도 있지만, 그건 잠시 지나가는 과정이지 하나님의 원래 마음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제 야곱입니다. 야곱은 벧엘에 단을 쌓겠다고 약속해 놓고 세겜에다 단을 쌓았습니다. 세겜과 벧엘이 그다지 멀지 않으니까, 뭐 다 비슷하니까 괜찮겠지 하고요. 그런데 그는 세겜 땅에서 살 수 없게 되었고, 살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꼼짝없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벧엘로 올라가라” 하셨고, 야곱은 그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가족들을 데리고 올라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단을 쌓을 때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십니다. 목사님은 이 ‘다시’라는 단어가 유난히 새삼스럽게 와닿았다고 하십니다. 꾀부리다 넘어진 야곱을 버리지 않으시고, 회개하고 올라온 그에게 다시 나타나 축복하시는 하나님이니까요.
그러면 복이란 무엇인가. 목사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복은 행운이 아니에요. 복은 길이에요.” 사람들은 복을 행운으로, 어쩌다 재수 좋아 걸리는 로또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행운은 확률이 적은 것이고, 하나님은 복에 인색하신 분이 아니라 오히려 복을 쏟아부어 주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다고 하셨고,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이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잘 사는 법이 있고 복받는 법이 있는데, 꾀부리면 바람에 나는 겨같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가장 서늘했던 대목 — ‘이단(異端)’의 한자 풀이입니다. 다를 이(異)에 끝 단(端), 곧 끝이 다르다는 뜻이더라는 겁니다. 세겜은 끝이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는 것 같았고, 단도 분명히 쌓았고, 겉으로는 다 맞는 것 같았는데 끝이 조금 달랐습니다. 많이도 아니고 세겜과 벧엘 거리만큼, 딱 그만큼 달랐습니다. 그게 이단이고, 그것이 복받지 못하는 길이며 바람에 나는 겨가 되는 길이라고 하십니다. 마지막에 목사님은 시편 23편의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를 꺼내시며, 그것이 시적인 표현만이 아니더라고, 하나님은 정말 우리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따라 열매 맺기를 원하신다고 축원하십니다.
내게 남은 것
일하면서 가장 무서운 건 대놓고 어기는 게 아니라 “이 정도면 비슷하지” 하는 판단입니다. 약속한 날짜에서 이틀, 합의한 사양에서 한 항목, 보고서의 숫자에서 소수점 한 자리. 세겜과 벧엘은 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거기서 꼼짝없이 죽게 되었습니다. 끝이 조금 다른 것, 그게 오늘 목사님이 말씀하신 ‘끝이 다름’이고, 나는 그동안 그걸 융통성이라고 불러 왔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 복을 행운으로 이해하면 일하는 태도가 도박이 됩니다. 한 방을 기다리고, 운이 없다고 원망하고, 확률에 인생을 겁니다. 그런데 복이 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길은 매일 걸어가는 것이고, 걸은 만큼 나아가는 것이고, 무엇보다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에 인색하신 분이 아니라 쏟아부어 주고 싶어 하시는 분이라는 말이 오래 남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인색함이 아니라, 그 길 대신 지름길을 찾는 내 꾀였습니다.
그리고 넘어졌을 때의 위로. 야곱은 이미 한 번 꾀를 부려 실패한 사람인데, 회개하고 벧엘로 올라가자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실수한 프로젝트, 어긋난 관계, 지키지 못한 약속 앞에서 이제 끝났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다시 나타나셔서 축복하십니다. 그러니 오늘 할 일은 하나뿐입니다. 세겜에 세운 단을 버리고, 원래 약속했던 벧엘로 올라가는 것.
오늘의 기도: 비슷하면 됐다고 말하는 저에게, 끝까지 같은 자리로 올라갈 정직을 주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 His CCM 기도 피아노 (24시간 라디오): https://www.youtube.com/@hisccm/live
- 앨범 «Grace Piano Prayer»: https://open.spotify.com/artist/6HOuDJojMSQHSHzIOt83sn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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