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기새 김동호 #2221 — 흉내만 내도 복은 같다

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21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14장 21~23절 —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하자, 아브람은 손을 들어 맹세합니다.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말씀의 흐름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구하려고 전쟁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목사님은 여기서 당시의 상식을 짚어주십니다. 전쟁은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라, 이기면 적의 모든 것을 전리품으로 가질 권리가 있었다는 것. 그러니 소돔 왕의 제안은 특별한 호의도 아니고 그냥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아도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는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것을 사양합니다. 다만 전리품의 십분의 일은 살렘 왕이자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하나님의 몫으로 드리고, 함께 나가 싸운 젊은이들의 몫은 꼬박꼬박 챙겨줍니다. 자기 것만 사양한 겁니다. 그리고 그 사양하는 이유가 근사합니다 — 소돔 왕이 “내가 아브라함을 부자 되게 만들었다”고 말하는 게 싫어서. 하나님 때문에 부자가 된 사람이라는 그 한 줄을 지키고 싶어서였습니다.

목사님은 여기서 성공하는 길을 나눠 보여주십니다. 사람들이 보통 택하는 길은 힘 있는 사람의 덕을 보는 것, 흔히 말하는 백과 끈과 줄입니다. 악인의 꾀를 따라 권력 있는 사람에게 뇌물을 갖다 바치고 부정한 일을 행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모습이고요. 그 길은 제법 효과도 있고 넓고 쉽고 확실합니다. 그러나 성경으로 아브라함을 배우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말씀을 배우는 것이라고 못을 박으십니다. 읽었으면 흉내라도 내려고 발버둥 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은 쉬운데 살기는 어렵다며, 목사님은 자기 집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한동안 한국교회의 세습을 열심히 반대했고, 덕분에 목사인 막내아들에게 세습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셨다고요. 자식에게 길을 열어주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느냐고 솔직히 말씀하십니다. 다만 아들이 “아비 덕에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세습한 아들 목사들 대개 똑똑하고 실력 있어서 아버지가 밀어주지 않았어도 잘할 사람들인데, 사람들은 끝내 아버지 능력으로만 평가한다는 것. 그래서 목사님은 그것을 멀쩡한 아들을 못난 자식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부모의 행위라고 보셨습니다.

세 아이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빈티지 옷 가게를 시작한 막내에게 자리 잡을 때까지 생활비를 도와주랴 했더니, 고마워하면서도 사양하며 이렇게 답했답니다. “좋기는 좋지만 그러면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를 할 수 없잖아요.” 한동대를 다니던 큰아이는 그 학교로는 세상에서 출세하기 어렵겠다 싶어 재수를 하려다가, 기도해 보고 결정하라는 아버지 말에 기도원에 올라가 이사야 31장 1절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는 화 있을진저”를 응답으로 받고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해준 말이 “아비는 네가 학교 덕 보는 거 싫어, 사람 덕 보는 거 싫어. 넌 하나님 덕만 보는 사람이 되거라”였습니다. 둘째를 훈련소에 데려다주면서는 “아빠 군대 아는 사람 많다. 그러나 전화 안 한다. 아빠 하나님께만 전화할게” 하셨고요. 그 기도의 응답이 기가 막혔습니다 — 최전방 수색중대 유격 조교. 그런데 그 아이가 편지에 썼습니다. “아빠, 유격 재미있어요.”

마지막에 목사님은 자식 자랑 같아 쑥스럽다면서도, 인생의 승부를 하나님께만 거는 삶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인지 보여주려고 한 이야기라고 하십니다. 큰 물주를 만나 교회를 개척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잡은 물주는 큰 물주가 아니라 조물주입니다”라고 답했던 것도 결국 아브라함을 공부하며 배운 믿음의 흉내였다고요. 그리고 오늘의 결론입니다. “흉내만 내도 복은 똑같이 받습니다.”

내게 남은 것

일하는 자리에서 가장 달콤한 유혹은 부정이 아니라 정당한 몫입니다. 아브라함이 사양한 것도 훔친 것이 아니라 목숨 걸고 싸워 얻은, 누가 봐도 당연한 자기 몫이었습니다. 받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안 받은 이유는 딱 하나 — 내 성공의 출처가 누구로 기록되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오늘 내 일이 잘 풀렸을 때 “누구 덕에 됐대”라는 문장이 붙는지, “저 사람 실력이고 하나님 은혜”라는 문장이 붙는지. 그 한 줄을 지키려고 눈앞의 이익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가 오늘의 질문이었습니다.

특히 마음에 박힌 건 막내아들의 대답입니다. “그러면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를 할 수 없잖아요.” 도움이 나쁜 게 아니라, 도움을 받는 순간 사라지는 기도가 있다는 것. 인맥으로 해결되는 일이 늘어날수록 하나님께 물을 일은 줄어듭니다. 넓고 쉽고 확실한 길을 택하면 결과는 얻겠지만, 그 결과가 내 신앙의 간증이 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이 큰 위로가 됐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완전할 자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완성이 아니라 흉내를 요구하셨습니다. 읽었으면 따라 해보려고 발버둥 치는 것, 오늘 사람에게 걸 전화를 한 번 참고 하나님께 먼저 아뢰는 것. 그 어설픈 흉내에도 복은 똑같이 주어진다니, 오늘 하루는 백과 끈이 아니라 하나님께 줄을 서보기로 합니다.

오늘의 기도: 사람 덕 보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 덕만 보는 하루를 살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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