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기새 김동호 #2314 — 옥에도 하나님 나라가 있다

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314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마가복음 1장 14~15절 —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요한이 잡힌 후”라는 짧은 한 구절 앞에서 오래 머무십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였고,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가 영광 받는 일을 오히려 두려워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과 예수님께 돌린 하나님의 사람 중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말로는 인간적으로 보면 비참했습니다. 옥에 갇혔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마가는 그 과정을 자세히 쓰지도 않고 “요한이 잡힌 후”라는 짧은 말로 지나갑니다. 목사님은 솔직하게 고백하십니다. 이 말씀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고. 하나님은 왜 그토록 충성스러운 종이 옥에 갇히도록 내버려 두셨을까, 왜 그 죽음을 막아 주지 않으셨을까, 왜 죽도록 충성한 모세를 가나안에 들이지 않으시고 느보산에서 죽게 하셨을까.

그 대답으로 목사님은 뜻밖에 집안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칠남매 막내였던 아버님의 바로 윗 형님, 그러니까 큰아버님은 독립운동을 하시다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으셨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가 8·15 해방으로 풀려나신 분입니다. 모진 고문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말년에는 금호동 산동네, 부엌도 없는 단칸방에서 아주 가난하게 지내셨습니다. 기록이 다 남아 있으니 신고만 하면 훈장도 받고 아파트도 나오고 연금도 받을 수 있는데, 가족이 권하면 큰아버님은 딱 한마디 하셨답니다. “훈장 받으려고 독립운동했나?” 결국 사촌 누님이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가시면서 아버지가 걱정되어 몰래 신고를 해 훈장도 받고 노년은 편히 지내다 가셨지만, 목사님에게는 그 한마디가 끝내 잊히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도 그러지 않았을까, 목사님은 오늘 문득 그렇게 생각해 보셨다고 합니다. “내가 영광 받으려고 하나님의 일을 했나?” 정말 믿음이 큰 사람들은 상 받으려고, 칭찬 받으려고 예수 믿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예수님 때문에 고난당하고 핍박받는 일을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사도행전의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 잡히고 매 맞고 풀려나면서, 그 이름을 위하여 핍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기뻐하며 공회를 떠났습니다. 팔복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목사님 자신의 이야기도 이어집니다. 40대 교회 개척 시절, 나름대로 죽을 것 같은 힘든 시간을 보내셨는데 지금 돌아보니 다 지나갔고, 지나고 보니 참 다행이었다고 하십니다. 그런 고생도 고난도 없이 큰 교회 목사로 영광만 받고 칭찬만 받고 높임만 받다가 목회와 인생을 마쳤다면 오히려 부끄러웠을 것 같다는 겁니다. “하나님 때문에 나도 조금 고생한 게 있구나” 하는 것이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일이 되었다고요. 그러면서 당신을 키워주신 목사님의 은퇴사를 다시 꺼내십니다.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우리는 다 무익한 종이라,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니라. 무익한 종은 물러갑니다.”

그리고 본문의 핵심 단어,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보통 천국, 천당이라는 말을 쓰는데 그 언어는 조금 제한적입니다. 천국은 하늘나라인데, 그러면 이 땅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냐는 것이죠. 가장 정확한 성경적 언어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죽은 이후에만, 하늘에만 있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기부터 저기까지 걸쳐 있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요한이 갇힌 곳은 옥이었지만 거기에도 하나님 나라가 있었고, 그는 거기서도 하나님 나라를 누렸습니다. “높은 산 거친 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주기도문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도 같은 고백입니다. 목사님은 말기암으로 세상을 떠난 날기새 가족 한 분을 다시 기억하십니다. 따님이 전하기를, 날기새 말씀 때문에 말기암 고통 중에도 천국처럼, 하나님 나라처럼 지내다 가셨다고. 믿으면 암에 안 걸리는 것이 아니고, 죽지 않는 것이 아니고, 옥에 안 갇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 — 그것이 믿음의 정수요 진수라고 하십니다.

마지막은 “때가 찼고”입니다. 2천 년 전 말씀인데 아직 종말이 오지 않았으니 어폐가 있지 않느냐는 의심이 들 수 있습니다. 목사님은 시간 개념이 다르다고 설명하십니다. 이 세상의 시간은 직선이라 처음과 끝이 갈수록 멀어지지만, 하나님 나라의 시간은 원이어서 처음이 끝이고 끝이 처음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이요 나중이라 하신 그 말씀,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그 말씀입니다. 그러니 언제나 지금이 종말입니다. “신랑이 더디 오리라, 아직 멀었을 거야”는 세상적·역사적 시간 개념일 뿐, 하나님 나라의 시간으로 보면 우리는 지금 그 문 앞에 붙어 서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회개하고 지금 복음을 믿고, 등불을 준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살라는 것이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내게 남은 것

일을 하다 보면 계산이 먼저 섭니다. 이만큼 했으면 이만큼은 인정받아야지, 이 정도 충성했으면 자리 하나쯤은 와야지.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 계산 자체를 조용히 흔듭니다. “훈장 받으려고 독립운동했나?” 이 한마디 앞에서, 내가 해온 일의 동기가 성과였는지 사명이었는지 금방 드러납니다. 무익한 종은 사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억울함이 올라올 때마다 꺼내 볼 문장을 하나 얻었습니다.

또 하나, 하나님 나라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요한의 옥에도 하나님 나라가 있었다면,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 — 답답하고 인정도 없고 때로는 옥 같은 그 자리 — 에서도 하나님 나라는 가능합니다. 환경이 바뀌어야 누리는 나라라면 그건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조건의 나라일 겁니다. 말기암 고통 중에도 천국처럼 지내다 가셨다는 그 고백이 오래 남습니다.

그리고 시간. 원으로 된 시간, 지금이 곧 종말이라는 감각은 일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나중에, 좀 여유 생기면, 아직 멀었으니까” — 그게 신랑이 더디 오리라는 생각입니다. 미뤄둔 사과, 미뤄둔 결단, 미뤄둔 회개를 오늘 안에 끝내라는 뜻으로 들었습니다. 남아 있는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이 종말입니다.

오늘의 기도: 옥 같은 자리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하시고, 미루지 않고 오늘을 종말로 살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해피리드는 바순 리드를 직접 만드는 공방입니다. 바순을 배우는 분이라면 아래에서 리드와 케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전 상품 무료배송입니다.

🎵 해피리드 자사몰 ·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 유튜브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