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기새 김동호 #2278 — 생명은 하나님께 있다

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78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37장 18~22절 — 형들이 멀리서 요셉을 보고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하며 죽이기를 꾀합니다. 구덩이에 던지고 악한 짐승이 잡아먹었다 하자, 그러면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그때 르우벤이 막아섭니다.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이번 녹화를 미국 애틀랜타의 호텔 방에서 하셨습니다. 한국을 떠나 도착한 다음 날, 현지 시간 새벽 세 시 반쯤 일어나 카메라를 켜셨다고 합니다. 오전에는 네 시간 차를 달려 사우스캐롤라이나 콜롬비아로 가 집회를 하고, 월요일에 다시 애틀랜타로 돌아와 또 한 주간 집회를 하신다고요. 뒷벽이 깨끗한 방이 나와서 다행이라며 웃으시는 그 새벽에, 오늘의 본문이 열립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멀리서 양을 치는 형들이 잘 있는지 보고 오라고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세겜에 있는 줄 알았던 형들은 도단으로 옮겨 가 있었고, 요셉은 형들을 찾아 도단까지 갑니다. 형들은 오는 동생을 보고 죽이기로 모의하고, 르우벤이 그것을 막아 구덩이에 넣자고 합니다. 몰래 빼내어 아버지에게 돌려보내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마엘 장사꾼들이 지나가는 것을 본 유다가 뜻밖의 제안을 합니다 — 죽이지 말고 팔아버리자. 그래서 요셉은 애굽 보디발의 집으로 팔려 갑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이번에 새삼스러운 의문이 들었다고 하십니다. “만일 형들이 르우벤의 말을 듣지 않고 그냥 요셉을 죽여버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형들은 다수였고 르우벤은 혼자였습니다. 다수가 고집을 부려 죽였다면, 애굽의 종이 되고 총리가 되고 흉년을 피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닐까? 인간에게는 이것도 저것도 선택할 자유가 있으니까요. 이 질문을 한나절 내내 붙들고 계셨다고 하십니다. 이제껏 설교하면서 거의 처음 다뤄보는 이야기라고요.

목사님이 얻은 답은 자유의지의 한계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할 자유까지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구원의 능력이 아니라 책임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문제는 내가 책임질 수 있지만, 남의 문제는 내가 책임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 자유의 한계는 나에 대한 결정까지입니다. 요셉의 운명을, 이스라엘의 운명을 내가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내가 자유가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까지 결정적으로 역사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깨달음이 나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죽이면 저 꿈이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큰소리쳐도,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서 꾼 꿈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꼼짝없이 죽을 것만 같은 요셉의 형들 같은 결정이 우리 앞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삶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만일 악인들의 자유가 능력이 되어 우리 삶을 지배했다면 지구는 벌써 멸망했을 것이고, 우리도 벌써 죽었을 것이라고 목사님은 말씀하십니다. 수많은 구덩이와 모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 있는 까닭은, 내 생명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 주께 있네, 능력 주께 있네” 하는 복음성가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짚으십니다. 우리는 흔히 죽어서 갈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고, 타락한 이 세상은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움직이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은 그것을 “가스라이팅 당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사탄에게 능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세상을 움직이고 지배하시는 운행자는 하나님이지 마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마치 자기에게 권세가 있는 것처럼 “너 하나 죽이는 것쯤은 문제도 없어” 하며 공포를 조장할 뿐입니다.

내게 남은 것

일하면서 가장 힘 빠지는 순간은 실패했을 때가 아니라, 누군가 나를 대놓고 밀어내려 할 때입니다. 다수가 한쪽으로 기울고 나는 혼자인 것 같을 때, 저 사람들의 결정 하나로 내 몇 년이 날아가겠구나 싶은 순간이 옵니다. 오늘 말씀은 그 공포의 전제 자체를 무너뜨립니다. 요셉의 형들은 다수였고 악의도 충분했지만, 끝내 요셉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요셉의 생명이 형들에게 달려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이 말씀은 저를 겸손하게도 만듭니다. 내 자유는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데까지입니다. 회사의 운명, 시장의 흐름, 다른 사람의 마음 — 내가 다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책임질 수 없는 것까지 자유를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분명합니다. 내 몫의 결정은 정직하게 책임지고, 내 몫이 아닌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 이 경계선이 흐려질 때마다 저는 쓸데없는 두려움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꿈에 대해서. 하나님 안에서 꾼 꿈이라면, 그 꿈을 막을 권한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형들은 구덩이를 팔 수 있고, 장사꾼에게 팔아넘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덩이와 그 매매마저 결국 하나님의 대본 안이었습니다. 오늘 하루, 나를 흔드는 목소리 앞에서 이 한 문장만 붙들고 가려 합니다 — 내 생명은 저들의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유와 능력에 달려 있다.

오늘의 기도: 내 몫만 책임지게 하시고, 나머지는 주께 맡기고 두려움 없이 걷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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