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기새 김동호 #2258 — 하나님께 욕심 없는 죄

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58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27장 33~37절 — 야곱에게 축복을 빼앗긴 에서가 아버지 이삭 앞에서 방성대곡합니다.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그러나 이삭의 대답은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였습니다.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잘 알려진 말씀으로 시작하십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 욕심이 문제인 이유는 욕심이 죄를 낳고, 그 죄의 삯이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목사님은 우리가 흔히 놓치는 지점을 짚으십니다. 죄란 무엇인가? 우리는 대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것을 죄라고 생각합니다. 따먹지 말라 하신 선악과를 따먹는 것, 금하신 것을 행하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죄의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범죄라는 것입니다.

이 논리는 곧바로 욕심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산상보훈의 팔복 중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는 욕심 없는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복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같은 산상보훈에 정반대로 보이는 말씀도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주리고 목마르다는 건 욕심 아닙니까. 그러니까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할 것에는 욕심을 버리고, 욕심을 가져야 할 것에는 욕심을 가지는 것 — 그것이 바르게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늘 거꾸로 산다는 데 있습니다. 욕심내지 말아야 할 것에는 욕심을 부리고, 욕심내야 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서는 아무 욕심이 없습니다. 목사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욕심이 많은 것도 문제지만, 그에 못지않게 욕심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요.

에서가 그랬습니다. 배가 죽게 되었는데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하나님의 축복을 팔아넘겼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경홀히 여겼더라”고 기록합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우리도 다 에서를 닮았다고 하십니다. 1951년생, 국민소득 60불이 안 되던 세계 최빈국에서 태어난 당신이 지금 4만 불에 다다르는 경제 대국에 살고 있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우리는 누구나 다 부자입니다.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도 예전 사람들에 비하면 밥 걱정은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만족할 줄 모르고, 늘 배고파하고, 돈에 주리고 목말라합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은 며칠째 걸러도 전혀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 원인을 목사님은 어리석은 교만이라고 진단하십니다. 소득이 50불에서 4만 불까지 올라오다 보니 인간의 힘이 대단하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하나님 없이도 살 자신이 생겼습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장사해서, 공부해서 얻었다고 생각하니 하나님에 대한 간절함이 사라진 것입니다. 국민소득 7천 불을 넘어가면 기독교 인구가 줄어든다는 이야기가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입증되었다고 하십니다. 만 불을 넘어가면서 교회는 성장을 멈추었습니다. 하나님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127편이 그래서 무섭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목사님 자신의 고백이 이 대목에서 가장 뾰족합니다. 큰 교회 목회를 하면서 돈 걱정 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 날 “내가 어디 가서 밥 세끼 못 얻어먹으랴” 하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고, 그 말을 하자마자 깜짝 놀라 두려움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 자식 봐라, 너 정말 나 없어도 하루 세끼 먹을 수 있을 것 같으냐” 하시면 어쩌나 하는 무서움이었습니다. 밥 굶는 사람들이 능력이 없어서, 게을러서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 —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시면 우리도 꼼짝없다는 것입니다. 반면 야곱은 인간적으로 뒤떨어지는 면이 있어도 한 가지 장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 없이는 못 산다는 것. 팥죽은 한두 끼 굶어도 괜찮지만 하나님의 복을 못 받는 건 참을 수 없다는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목사님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늘 주인공의 자리에 자기를 놓는 착각을 지적하십니다. 에서와 야곱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늘 야곱이고, 사울과 다윗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늘 다윗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사울 같은 자리, 에서 같은 자리에 있을 때가 참 많습니다. 그리고 에서가 축복을 못 받은 책임은 야곱에게 있는 게 아닙니다. 야곱이 속인 것도, 빼앗은 것도 사실이지만 자기가 팔아먹었고, 자기가 하나님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내게 남은 것

“어디 가서 밥 세끼 못 얻어먹으랴.” 이 말이 오늘 내내 걸립니다. 일이 좀 되고, 경력이 쌓이고, 어디 가도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 싶어질 때 나오는 말입니다. 실력 있다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뒷전으로 밀어두는 마음의 첫 문장입니다. 실패해서 하나님을 잊는 게 아니라 잘돼서 잊습니다. 국민소득 7천 불 이야기가 남 얘기가 아닌 이유입니다.

죄에 대한 정의도 새겨둡니다. 나는 나쁜 짓을 안 했으니 괜찮다고 여겨왔는데,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도 똑같은 범죄라는 말씀. 며칠째 말씀을 걸렀는데 아무렇지 않은 상태, 하나님께 아무 욕심이 없는 상태 — 그것이 이미 죄라는 진단입니다. 금식하면 며칠 만에 밤낮 먹을 생각만 나서 결국 챙겨 먹게 되는데, 하나님을 잊고서는 배고픈 줄도 모르니 어리석은 길로 걸어가게 된다는 비유가 아프게 남습니다.

그래서 오늘 점검할 것은 하나입니다. 나는 지금 무엇에 주리고 목말라 있는가. 성과와 돈에는 그토록 배고파하면서 하나님께는 배부른 척하고 있지 않은가. 에서처럼 팔아넘긴 뒤에 방성대곡하며 “내게도 축복하소서” 하기 전에, 지금 야곱의 마음을 붙잡는 것.

오늘의 기도: 세상 것에는 배부르고 주님께는 주리는 자가 되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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