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310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마가복음 1장 1~6절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는 복음서의 문을 이사야의 인용으로 엽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리고 그 소리의 주인공, 약대털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던 세례 요한이 등장합니다.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뜻밖에도 당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시작하십니다. 반에서 노래를 제일 잘 부르는 아이였고, KBS ‘누가 누가 잘하나’에 나가 일등을 한 적도 있었다고요. 음악을 들으며 감동이 밀려오면 “이 기분에 죽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심취할 때도 있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전임 전도사가 되어 월급을 받기 시작하자, 조금씩 모아 제일 먼저 산 것이 아주 좋은 전축이었습니다. 목회하며 예배당을 건축할 때도 건물이 화려하면 오히려 예배가 불편해진다며 건축비를 무척 아꼈는데, 딱 두 가지만은 아끼지 않으셨답니다. 설계와 음향. 소리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소리 욕심’이 오늘 본문 앞에서 멈춰 섭니다. 마가는 예수님을 복음, 곧 말씀이라 표현했고, 세례 요한은 이사야의 글을 인용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세례 요한은 소리. 목사님은 이 대목을 그냥 흘려 넘길 수 없었다고 하십니다. 말씀은 소리를 통해 전달되고, 스피커가 좋아야 음성이 제대로 전달되듯 설교도 마찬가지인데,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 누구보다 잘 전달한 기막히게 좋은 스피커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쓰신 시가 하나 있습니다. 제목은 「세례 요한」. 내용은 황당하리만큼 짧습니다. “그에게서는 소리가 났다.” 끝입니다. 더 써야 할 것 같아 여러 날 고민했지만 더는 쓰여지지 않더랍니다. 그 한 줄로 시가 완성되어 버렸습니다. 목사님은 세례 요한이 부럽다고, 자신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정확하게, 가장 좋은 소리로 울려 내는 스피커이고 싶다고 고백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이 나옵니다. 좋은 소리는 입에서 나지 않고 삶에서 난다는 것.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은혜와 진리가 충만했던 것처럼, 말씀이 우리 삶을 통해 울려질 때 비로소 은혜로운 소리, 참된 진리가 전파됩니다. 목사님은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어 무씨와 배추씨를 구별할 줄 모른다고 하십니다. 설교 중에 그걸 설명해야 한다면 방법은 간단합니다. 휴대폰으로 지식 검색을 하면 그 자리에서 답이 나오고, 슬라이드까지 띄워 1%도 틀림없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심어보는 것. 다만 그건 몇 달이 걸리고, 남들 다 설교할 때 나는 설교를 못 하고 밭에서 농사만 짓게 됩니다.
더딘 것 같지만, 심어보고 안 지식이 정말 좋은 지식이고 좋은 소리입니다. 휴대폰 보고 책 보고 설교하면 자기도 모르게 “무씨래, 배추씨래“가 됩니다. 심어보고 먹어보고 살아보고 설교하면 “무씨다, 배추씨다“가 됩니다. ‘래’와 ‘다’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큽니다. ‘래’는 입에서 나는 소리고, ‘다’는 삶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적용이 날아옵니다. 좋은 소리는 사람을 감동시키고, 말씀을 빛나게 하고, 듣는 이에게 말씀에 대한 욕심을 갖게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삶에서 소리가 나야 합니다. 그 소리를 자식이, 가족이, 남편이, 아내가, 직장 동료가, 이웃이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평생 예수 믿고 살았는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거나, 더 나쁘게는 세상의 소리·엉뚱한 소리가 나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주변에 사람은 많은데 우리 때문에 하나님께 감동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여야 하고, 소리여야 하고, 편지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시는데 그 내용이 바로 우리 삶인 것 — 삶에서 소리가 날 때 사람들은 우리를 읽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읽게 됩니다.
내게 남은 것
‘래’와 ‘다’. 일하는 자리에 그대로 꽂히는 구분입니다. 검색해서 아는 것과 해봐서 아는 것은 문장의 끝 한 글자가 다릅니다. 자료를 잘 모아 정리한 보고는 1%도 틀리지 않아 보여도 결국 “그렇다더라”입니다. 직접 심어보고 몇 달을 기다려 본 사람의 말만 “그렇습니다”가 됩니다. 남들이 발표할 때 나는 아직 밭에 있는 그 시간이 억울하지만, 그 시간이 소리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
더 뼈아픈 건 ‘소리가 안 나는 것보다 나쁜 소리가 나는 경우’입니다. 신앙을 말로는 많이 하는데 정작 가족과 동료가 듣는 소리는 세상의 소리와 똑같다면, 나는 고장 난 스피커입니다. 설교자만 스피커가 아니라 믿는 사람 전부가 스피커라는 말씀 앞에서, 오늘 내 하루가 어떤 소리를 냈는지를 묻게 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제일 먼저 듣는 소리니까요.
목사님의 시 한 줄을 오늘 내 소원으로 빌려옵니다. “그에게서는 소리가 났다.” 설명도 변명도 필요 없는 한 줄. 말로 채우려 들지 말고, 심어보고 살아본 것만 말하는 하루를 살고 싶습니다.
오늘의 기도: 입에서 나는 소리 말고, 삶에서 나는 소리로 말씀을 전하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 His CCM 기도 피아노 (24시간 라디오): https://www.youtube.com/@hisccm/live
- 앨범 «Grace Piano Prayer»: https://open.spotify.com/artist/6HOuDJojMSQHSHzIOt83sn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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