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309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마가복음 1장 1절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창세기를 끝내고 오늘부터 마가복음을 시작하는 첫 시간입니다. 딱 한 절만 읽고 시작하는데, 그 한 절이 품은 무게가 만만치 않습니다.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먼저 왜 복음서를 자주 반복하는지 설명하십니다. 마태·마가·누가·요한, 이 사복음서에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과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이 예수님이시니, 다른 성경을 몇 권 다룬 다음에는 반드시 복음서 하나를 다시 집어 든다는 것입니다. 늘 읽던 말씀, 늘 아는 말씀이지만 그 안에서 새삼스러운 은혜를 기대한다고 하십니다.
이야기는 요한복음으로 건너갑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말씀(로고스) 으로 풀었습니다. 당시 헬라 철학을 하는 사람들의 궁극적 관심이 “로고스, 곧 진리가 무엇이냐”였기 때문에, 요한은 그들에게 “너희가 찾는 그 진리가 바로 예수님이다”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목사님은 동서양을 나란히 놓으십니다. 동양의 선현들은 도(道) 를 닦았습니다. 아무렇게나 막 살면 안 된다, 사람답게 사는 길이 따로 있다 — 그래서 법도라는 말을 썼습니다. 서양의 선현들은 철학을 했고, 그 궁극적 관심은 진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진리라는 것도 결국 삶의 이치, 삶의 방식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욕심대로, 자기 멋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자각은 동양의 도나 서양의 철학이나 같았다는 것입니다. 도도 길이고, 방식도 영어로 하면 결국 웨이(way) 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6절이 기막힌 정리가 됩니다. “내가 곧 그 길이고, 너희가 찾는 그 진리다. 그래서 내 안에 생명이 있다.” 요한은 예수님을 말씀으로 풀었고, 마가는 복음서를 시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으로 풀었는데, 따져보면 둘은 같은 개념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로고스이시고 말씀이시고 진리이시고 길이시며, 그래서 복음이시고,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것이 실제로 중요한가. 목사님은 자신이 그 증인 중 하나라고 하십니다. 인생은 수없이 많은 선택과 판단과 결정의 연속이고, 그 순간의 판단이 삶을 좌우합니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이 일을 할까 말까. 그런데 우리의 판단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무엇이냐 하면 — 욕심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금하셨을 때 사탄은 하와에게 “네 삶의 주인은 너다, 먹고 싶으면 먹어라” 하고 유혹했고, 하와가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러웠습니다. 그 ‘탐스러움’이 곧 탐욕입니다. 말씀을 따라 결정하지 않고 욕심을 따라 결정했기에 인생이 무너지고 사망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욕심은 눈을 멀게 하고, 눈이 멀면 길을 잃고, 길을 잃으면 죽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주 구체적인 간증을 들려주십니다. 길이 안 보이고 막막할 때 목사님은 성경책과 성경사전이 든 휴대폰, 메모지와 볼펜을 들고 책상 앞에 앉아 가만히 계신답니다. 그러면 그동안 읽고 설교했던 말씀들이 툭툭 떠오르고, 지금 내 문제와 연관된 말씀을 하나하나 다 적고, 그것을 A유형 B유형으로 나눠 정리하면 갈 길이 보인다고요. 그런데 그러면 앞이 환해질까요? 더 깜깜해집니다. 하나님이 내놓으신 답이 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죽겠는데 하나님은 죽으라 하시네.” 그때부터 기도에 들어갑니다. 이 말씀대로 살게 해 주세요, 용기를 내서 실천하게 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면 용기가 요만큼씩 생기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덤벼들면 — 그때 정말 길이 환해진다고 하십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찬송과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이 그 자리에 포개집니다.
내게 남은 것
일하면서 내리는 결정들을 떠올려 봅니다. 저는 늘 그것이 ‘판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데이터를 보고, 상황을 보고, 합리적으로 고른다고요. 그런데 목사님은 그 판단을 실제로 결정하는 건 욕심이라고 못 박으십니다. 아프지만 맞는 말입니다. 결론을 먼저 욕심으로 정해놓고 논리를 나중에 붙이는 일이 제게도 적지 않았습니다. 욕심이 눈을 멀게 한다는 말이 무서운 이유는, 눈먼 사람은 자기가 눈먼 줄 모르고 확신에 차서 걷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가장 오래 남은 건 ‘성경책과 메모지와 볼펜’이라는 장면입니다. 영적인 깨달음을 번개처럼 받는 게 아니라, 앉아서 떠오르는 말씀을 적고 유형별로 분류하는 지극히 실무적인 작업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비로소 그것이 하나님의 답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답이 마음에 쏙 들면 그건 내 욕심이 낸 답일 확률이 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듣기는 쉬운데 살기는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필요한 건 한 가지, 용기입니다. 답을 몰라서 못 가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무서워서 못 가는 날이 더 많습니다. 기도하면 용기가 요만큼씩 생긴다는 말에 기대어, 오늘은 그 ‘요만큼’을 구해 봅니다.
오늘의 기도: 욕심이 내는 답 말고 말씀이 내는 답을 택할 용기를 요만큼씩 주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 His CCM 기도 피아노 (24시간 라디오): https://www.youtube.com/@hisccm/live
- 앨범 «Grace Piano Prayer»: https://open.spotify.com/artist/6HOuDJojMSQHSHzIOt83sn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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