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305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49장 1~9절 — 야곱이 죽기 전에 아들들을 불러 모읍니다.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장자 르우벤부터 시므온과 레위, 그리고 유다까지,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축복과 예언이 차례로 쏟아집니다.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이 본문을 읽으며 조금 엉뚱한 질문으로 시작하십니다. “천국에도 축복과 예언이 있을까?” 그리고 스스로 답하십니다. 아마 없을 것이라고요. 천국은 복이 이미 완성된 나라인데 더 축복할 일이 무엇이 남아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슬픔도 아픔도 괴로움도 없는 완벽한 나라, 꿈꾸고 바라던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나라.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아서 하루 속에 천 년이 담기고 천 년 속에 하루가 담기는 세상이라면, 미래나 앞날이나 예언 같은 개념 자체가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그래서 축복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상급이라는 결론으로 넘어가십니다.
그리고 핵심 명제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우리가 복된 삶 살기를 원하셔서 축복의 길을 내셨다는 것.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 그 길을 가는 사람은 복을 받고, 가지 않는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하고, 반대로 가는 사람은 벌을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삶의 원리요 원칙입니다. 그러니까 축복은 운명이나 팔자가 아니라 삶을 통해서 받는 것입니다.
야곱의 축복과 예언이 바로 그 증거라고 하십니다. 아버지의 말이 허공에 떠 있는 점괘가 아니라 아들들의 삶과 하나하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르우벤은 장자요 능력이 출중했지만 아버지의 침상에 올랐던 그 실수 때문에 탁월하지 못하리라는 말을 듣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누이 디나의 일로 상대 족속을 속여 할례를 받게 하고, 그들이 통증으로 움직이지 못할 때 쳐 죽였던 그 잔인함과 혈기 때문에 저주를 듣습니다. 분노와 잔혹함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반대로 유다는 칭찬과 복을 많이 받습니다. 왜냐고 목사님은 물으십니다. 요셉이 종으로 팔려갈 때 그것을 막으려 했던 사람이 유다였고, 나중에 요셉이 베냐민을 인질로 잡아두려 할 때 “그러면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며 차라리 자기를 대신 잡아두라고 나섰던 사람이 유다였습니다. 그 마음 씀씀이가 축복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단순하지만 아주 중요한 진리가 나옵니다. 축복과 예언은 오늘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오늘의 삶과 행함이 우리의 앞날을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목사님은 교육전도사·전도사·부목사 시절 가르쳐 주신 목사님의 한마디를 꺼내십니다. “김 목사, 이력서는 종이에다 쓰는 게 아니야. 오늘의 삶으로 쓰는 거야.” 종이에 쓴 이력서를 들고 다니며 자리를 구하면 참 피곤하다고요. 교육전도사 할 때 교육전도사 일을 열심히 하면 그게 이력서가 되고, 사람들이 못 보는 것 같아도 다 읽는다고요. 그 이력서가 다음 자리를 결정하고, 그 자리에서 또 충성하면 그것이 다시 삶으로 쓴 이력서가 되어 그다음 앞날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덧붙이십니다. 죄에는 벌이 따르지만 회개하면 용서받는다, 그러나 벌을 면한 것이 곧 복을 받은 것은 아니다라고요. 구원은 믿음으로 얻지만, 이 땅에서 약속된 축복은 말씀을 지키고 행할 때 주시는 것이라는 구별입니다. 팔자도 운명도 금수저 은수저도 없고, 하나님의 축복에는 조금도 불공평함이 없으시다는 선언으로 말씀을 맺으십니다.
내게 남은 것
“이력서는 종이에 쓰는 게 아니라 삶으로 쓰는 거야.” 이 한 문장이 오늘 종일 따라다닐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직을 생각할 때 문서부터 손봅니다. 문장을 다듬고 성과를 포장합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스승이 하신 말씀대로라면, 진짜 이력서는 지금 맡은 그 일을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입니다. 사람들이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읽는다는 말이 무섭고 동시에 공평하게 들립니다. 오늘 대충 한 하루도, 오늘 끝까지 붙든 하루도, 둘 다 내 이력서에 그대로 기록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벌과 복을 구별하신 대목도 오래 남습니다. 잘못을 사과하고 수습하면 그 일은 덮이지만, 덮였다고 해서 그것이 성과가 되지는 않습니다. 사고를 안 낸 것과 좋은 일을 해낸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신앙에서도 일에서도, 벌을 면하는 선에서 멈추지 말고 복을 받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 — 소극적인 무사고가 아니라 적극적인 성실로 가야 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리고 “듣기는 쉽고 배우기도 어렵지 않고 깨닫는 것도 어렵지 않은데, 그대로 사는 것은 참 어렵다”는 말씀. 날기새를 날마다 듣는 목적이 거기서 그치면 안 된다는 당부가 결국 오늘의 결론입니다. 미래는 허공에 떠 있지 않고, 오늘이 내일을 결정합니다. 그러니 오늘 주어진 일을 하나님의 식과 법을 고집하며 해내는 것, 그것이 내가 쓸 수 있는 유일한 예언입니다.
오늘의 기도: 종이에 쓰지 않고 오늘 하루로 쓰는 이력서를 정직하게 채우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 His CCM 기도 피아노 (24시간 라디오): https://www.youtube.com/@hisccm/live
- 앨범 «Grace Piano Prayer»: https://open.spotify.com/artist/6HOuDJojMSQHSHzIOt83sn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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