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기새 김동호 #2302 — 요셉의 5분의 1 정치

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302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47장 23~26절 — 요셉이 백성에게 말합니다. “오늘날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전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추수의 오분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사분은 너희가 취하여…” 백성은 대답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목사님은 오늘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요셉의 정치를 들여다보십니다.

말씀의 흐름

시작은 탈북민 이야기입니다. 목사님 집안도 이북에서 피난 내려온 피난민 가족이라 탈북민에 대한 마음이 남달라서, 목회하실 때 교인들에게 부탁해 취직도 시켜 드렸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몇 달을 못 버티고 뛰쳐나오곤 했답니다. 이유를 물으니 “월급이 너무 적습니다.” 십몇 년 전 평균 60만 원. 화가 나서 사장님들에게 물으니 그쪽에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일을 할 줄 모른다는 것. 목사님은 금방 알아차리셨습니다. 열심히 일하든 안 하든 똑같이 배급받는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마인드 자체가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

여기서 목사님의 진단이 나옵니다. 사회주의는 평등을 주장하지만, 그 평등을 혁명과 투쟁으로 쟁취합니다. 그런데 열심히 일한 사람과 일하지 않은 사람이 똑같이 대우받는 것은 평등이 아니라, 불공평 중에서도 가장 질 나쁜 불공평이라는 것입니다. 그 질 나쁜 불공평이 나라를 가난하게 만들고 백성을 굶주리게 했고, 이미 역사가 증명했습니다. 자본주의는 그 약점을 극복하고 비교할 수 없는 성장을 가져왔습니다 — 남한과 북한을 비교해 보면 극명하지요.

그러나 자본주의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목사님은 그것을 ‘적절한 유지의 실패’라고 보십니다. 과유불급, 모자람도 문제지만 지나침도 문제입니다. 사회주의의 문제가 모자람이라면 자본주의의 문제는 지나침입니다.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되어 멈추지를 못하고, 부익부 빈익빈의 극명한 불평등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자본주의도 성공한 경제 이념이라고까지는 생각하기 어렵다고 하십니다. 두 문제를 잘 조율하는 것 — 그것이 정치하는 사람의 가장 큰 과제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요셉입니다. 서른에 국무총리가 된 요셉은 7년 풍년 동안 백성이 흥청망청할 때 곳곳에 창고를 지어 곡식을 쌓았습니다. 흉년이 닥치자 백성은 먹을 것이 떨어져 땅을 팔아 곡식을 샀고, 결국 토지는 국가 소유가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사회주의 같은데, 목사님이 눈여겨보신 대목은 그다음입니다. 5분의 1만 바로에게 상납하고 5분의 4는 너희가 가져라. 절반을 내라 할 수도, 더 착출할 수도 있었는데 80%를 백성의 몫으로 남겼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80%가 자기 것이 되니, 사회주의가 빠졌던 의욕 상실을 막았습니다. 경제학자도 정치인도 아니라 그 비율이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하시면서도, “느낌상 괜찮지 않나, 아주 건강한 배분이 아니었을까” 하십니다. 나라도 가난하지 않고 백성도 의욕을 잃지 않는 절묘한 균형. 자기 땅은 없어졌지만, 애굽 백성은 풍년 때보다 오히려 더 좋은 세상에서 살게 된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기독교의 정신입니다. 초대교회가 나누어 먹었다고 기독교를 사회주의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기독교의 평등은 강제로 빼앗아 나눈 평등이 아니라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을 책임지는 자율적인 평등, 가장 고상한 평등이라고 하십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를 땅에 묻은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받고, 그것을 빼앗아 있는 자에게 주라 하십니다. 그것만 보면 무서운 자본주의 같지만, 기독교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많이 받은 사람이 가난한 자의 삶을 책임지고 돌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희년 — 50년 동안은 열심히 일해 늘려 가되, 50년이 되면 돌려주고 리셋합니다. 잃어버린 사람도 다시 기회를 얻는 것, 그 리셋이 참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목사님은 날기새를 듣는 청년들 중에서 요셉 같은 정치인, 요셉 같은 경제인이 나오기를 바라며 기도하십니다. 서로 빨갱이로 몰고 욕심쟁이로 몰며 싸우지만 말고, 기독교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연구해 제도에 반영하자는 것입니다.

내게 남은 것

목사님이 “저는 정치도 모르고 경제도 모릅니다, 조심스럽습니다”라고 여러 번 말씀하시면서도 기어이 이 본문을 다루신 이유가 마음에 남습니다. 모르면 입 다무는 게 편한데, 성경 안에 답이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에 두려움을 무릅쓰신 것이지요. 일하는 자리에서도 비슷합니다. 내 전문 분야가 아니라고 피해 버리면 편하지만, 누군가는 원칙을 들고 질문을 꺼내야 조직이 방향을 잡습니다.

실무로 가져오면 ‘5분의 1’이 핵심입니다. 함께 일한 성과를 나눌 때, 회사가 얼마를 가져가고 일한 사람에게 얼마가 남는가. 다 똑같이 나누면 열심히 한 사람의 의욕이 죽고, 다 거둬 가면 일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요셉은 일한 사람이 더 가져가게 하되, 그 결과로 아무도 굶지 않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평가와 보상을 설계하는 자리에 있다면, 이보다 더 선명한 기준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희년의 리셋. 한 번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장치가 내 팀 안에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한 번 찍히면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조직은, 결국 아무도 모험하지 않는 조직이 됩니다. 많이 받은 사람이 적게 받은 사람을 책임지는 것 — 제도 이전에 그것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몫이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더 가진 자리에 서게 되거든, 덜 가진 이의 몫을 지켜 주는 손이 되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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