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기새 김동호 #2300 — 같이 갈 건데, 하나님의 대답

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300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46장 1~4절 — 야곱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브엘세바에 이르러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을 드립니다.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나타나 “야곱아 야곱아” 부르시고 말씀하십니다.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말씀의 흐름

설교는 2019년 5월, 목사님의 폐암 수술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중학교 때 편도선 수술 말고는 전신마취 대수술이 처음이었던 날, 수술실로 가는 침대에 누워 아내에게 “잘 받고 올게요” 인사하고, 하나님께도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 “하나님, 다녀오겠습니다” 했답니다. 그런데 마음에 이런 대답이 왔다고 합니다. “같이 갈 건데.” 아내도 자식도 못 들어가는 그 문 앞에서 하나님이 기다리실 이유가 없다는 것, 내가 왜 여기서 너를 기다리느냐는 그 한마디가 충격이자 큰 위로였다고 하십니다. 난생처음 받는 수술인데 두려움도 떨림도 전혀 없었다고.

2021년 갑상선암 수술 때는 아예 먼저 물으셨답니다. “하나님, 같이 가실 거죠?” 대답은 “그럼”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술실에 누웠는데 천장에 영어 성경 구절이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Do not fear, for I am with you —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건강한 사람은 그냥 읽고 지나가는 말씀이 암 환자에게는 가슴에 탁탁 박힌다고, 그날은 그 글자가 음성 지원이 되어 귀로 들리는 것 같았다고 하십니다. “같이 간다 그랬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다윗의 고백이 그대로 자기 고백이 된 자리였습니다. 편안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불안하지는 않았다는 것.

이어 목사님은 예수님의 두 이름을 짚습니다. 하나는 구원 —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 또 하나는 임마누엘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고 떨어지면 말라 죽습니다. 우리가 죄로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갔기에, 떨어지면 죽을 우리를 살리시려고 하나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사람이 되어 오셨다는 것.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 곧 예수이고 곧 구원이라고, 이것이 기독교의 가장 핵심 복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두 가지 가정사가 나옵니다. 첫 담임 목회 시절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막내아들을 잃어버린 일 — 비가 부슬부슬 오는 골목 처마 밑에서 막대사탕 하나 물고 울까 말까 하던 아이를 이삼십 분 만에 찾았는데, 사모님은 그 뒤로 1년 가까이 아이 잃어버리는 악몽을 꾸며 자다가도 아이를 찾았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자명종 이야기. 자명종 두 개가 울려도 못 듣는 아내를 “곰”이라 놀렸더니, 아내는 “당신은 애 우는 소리를 못 듣는다”고 받아쳤다는 것. 그때 아셨답니다. 교회는 사모보다 목사가 더 사랑하고, 자식은 아빠보다 엄마가 더 사랑한다는 것을. 그리고 결론은 하나입니다. 사랑하면 잃어버리는 것처럼 무서운 게 없고, 잃어버릴까 봐 늘 함께 있는 것 — 그게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49장 15절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목사님은 “하나님 나 버리지 마세요, 함께해 주세요”라는 기도가 엄밀히 말하면 틀린 기도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구하지 않아도 이미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을 놓치는가? 하나님이 놓으신 적은 없고,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놓고는 하나님이 나를 떠나셨다고 착각하는 것이라고요. 상황이 그렇게 느껴질 때 사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하나님이 너를 버리셨어”라고 속삭이지만 속지 말라고 거듭 당부하십니다.

마지막 예화는 열두 살 예수님을 잃어버린 마리아와 요셉입니다. 무리 중에 함께 있는 줄 알고 하룻길을 갔다가 잃어버린 것을 알고, 사흘을 헤맨 끝에 성전에서 만났습니다. 목사님이 영락교회에서 하신 첫 주일 설교 제목이 ‘신앙인의 보편적인 착각’이었다고 합니다. 함께 계신 줄 알았는데 사실은 잃어버린 상태 — 우리가 하나님을 새까맣게 잊고도 잊은 줄 모르고 사는 때가 그렇게 많다는 것.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손을 붙잡는 한,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 손을 놓지 않으신다는 말씀으로 맺으십니다. 미신 섬기는 사람은 이사 날짜와 방향까지 무당에게 받지만, 믿는 사람은 주일만 빼고 편한 날 가고 싶은 쪽으로 가면 된다고. 하나님은 날짜와 방향을 정해주시는 대신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내게 남은 것

야곱이 내려간 애굽은 그가 원해서 고른 길이 아니었습니다. 흉년에 떠밀려 가는 길,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가지 마라”고 하지 않으시고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내려가겠다”고 하십니다. 일을 하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자리로 들어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결과를 보장받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들어가야 하니까 들어갑니다. 오늘 말씀은 그 문 앞에서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신 게 아니라 같이 들어가신다고 말합니다. 환경이 편안해지는 게 아니라, 편안하지 않은 자리에서도 불안하지 않게 되는 것 — 수술실의 간증이 정확히 그 차이였습니다.

그리고 뜨끔한 대목은 ‘보편적인 착각’입니다. 함께 가는 줄 알았는데 하룻길을 가서야 잃어버린 걸 아는 것. 바쁘게 일하는 날일수록 하나님을 새까맣게 잊고도 잊은 줄 모릅니다. 하나님이 나를 놓으신 적은 없으니, 점검할 것은 늘 내 손입니다. 오늘 하루 중 어디쯤에서 내가 그 손을 슬그머니 놓았는지 돌아보는 것, 그게 신앙의 실무일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남는 건 사랑의 정의입니다. 자명종 두 개 소리에는 못 깨면서 아이 울음소리에는 대번에 깨는 엄마. 사랑하면 잃어버리는 게 제일 무섭고, 그래서 늘 곁에 있는 것. 설령 그 엄마가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겠다는 분이 내 옆에서 함께 걷고 계신다면, 오늘 들어가야 할 자리가 어디든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나설 용기는 생깁니다. 어차피 대답은 정해져 있으니까요. “같이 갈 건데.”

오늘의 기도: 두려운 문 앞에 설 때, “같이 갈 건데” 하시는 음성을 듣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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