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기새 김동호 #2291 — 하나님의 수를 읽는 사람

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기새 #2291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41장 37~43절 — 요셉의 해몽을 들은 바로가 신하들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그리고 노예 출신의 죄수였던 요셉에게 인장 반지를 끼우고,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어 애굽의 총리로 세웁니다.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바둑 이야기로 시작하십니다. 학교 다닐 때 어깨너머로 배운 바둑이라 정식 실력은 아니고,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너는 10급쯤 될 거다” 했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내 바둑을 둘 때는 10급인데, 남의 바둑에 훈수를 두면 8급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실력은 몇 급일까요? 목사님은 8급이라고 하십니다. 못 보는 것을 볼 수는 없으니까요. 보인다는 건 그만한 실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 왜 내 바둑을 둘 때는 그 실력이 안 나올까요. 욕심 때문입니다. 이기겠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서, 볼 수 있는 수를 두 수나 못 보게 됩니다. 남의 바둑은 내가 꼭 이겨야 할 이유가 없으니 그냥 보입니다. 여기서 목사님은 산상수훈 팔복의 한 구절로 건너가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이 깨끗하면 인생의 수가 늘고, 못 보던 것이 보이고, 결국 하나님의 수까지 볼 수 있다는 것. 목사님은 이 복을 “하나님의 수로 인생의 바둑을 둘 것임이요”라고 풀어 읽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지혜로 수를 두는 사람이 어떻게 패배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도 같은 선상에서 읽히십니다. 젊은이들이 보는 환상, 늙은이들이 꾸는 꿈은 망상도 허상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수를 읽는 것입니다.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고, 그 지혜로 살아가는 사람을 당할 자는 세상에 없다고 하십니다.

이어지는 네 가지 간증이 오늘 설교의 심장입니다. 첫째, 7년 풍년에 7년 흉년을 대비하라 — 성경에서 배운 이 지혜를 인생에 적용해 목회할 때부터 은퇴를 준비했더니, 70 중반 노년이 흉년이 아니라 풍년 못지않은 삶이 되었다고 하십니다. 둘째, 느보산으로 올라가라 — 처음엔 하나님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어느 날 그것이 모세의 공을 무시한 게 아니라 모든 공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고단수임을 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세도 그 수를 읽었기에 불평 없이 올라갔고, 결국 전무후무한 선지자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목사님도 “가나안에 훈장 달고 들어가는 것보다 느보산으로 올라가는 것이 더 옳고 더 좋다”는 수를 읽었고, 그것이 인생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지켜냈다고 하십니다.

셋째, 흩어짐입니다. 5천 명 교인이 갈 데가 없어 방황할 때 사도행전에서 길을 찾으셨습니다. 핍박으로 사방에 흩어진 초대교회가 불꺼짐이 아니라 불붙임이 되어 안디옥, 빌립보, 골로새, 갈라디아, 땅끝까지 복음이 퍼졌습니다. “5천 명 데리고 갈 생각 말고 사방으로 흩자.” 지금도 그것을 신의 한 수라 부르신다고 합니다. 높은뜻 교회는 16개가 되었고, 본인도 아름다운 은퇴를 다시 할 수 있었습니다. 넷째,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이다” — 그 용기 없이 이룬 아름다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고 하십니다. 흩어지면 흩어지지, 길바닥에서 예배드리면 광야교회라고 하지, 사람이 주인 되는 교회는 할 수 없다는 고집. 그 고집으로 얻은 승리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본문의 요셉입니다. 요셉은 해몽할 때 자기가 그 자리를 맡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노예 출신에 죄수 신분이었으니까요. 그저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를 감독관으로 세우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바로의 눈에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 바로 요셉으로 보였습니다. 이방 왕마저 알아본 것입니다.

내게 남은 것

내 일에 내가 가장 서툰 이유를 오늘 배웠습니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것이라 욕심이 끼어서 두 수를 못 보는 것입니다. 남의 프로젝트는 문제점이 훤히 보이는데 내 프로젝트만 보면 눈이 흐려지는 경험, 누구나 있습니다. 마음을 비우는 일은 겸손의 문제가 아니라 실력의 문제였습니다. 청결한 마음은 곧 더 잘 보는 눈입니다.

7년 풍년에 7년 흉년을 대비하라 — 목사님은 이것을 교리가 아니라 삶의 운영 원칙으로 쓰셨습니다. 잘 될 때 다음을 준비하는 것. 일이 풀릴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는 걸 알면서도 보통은 그때 가장 안 준비합니다. 그리고 느보산. 내 공을 내가 챙기려 할 때 오히려 공이 사라지고, 손을 떼는 수를 둘 때 모든 공이 산다는 역설. 흩어짐이 불꺼짐이 아니라 불붙임이 된다는 것도 같은 이치였습니다.

마지막 당부가 뼈아팠습니다. 성경은 지식으로 알려고 공부하는 게 아니라고. 율법사는 계명을 다 알았지만 예수님은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하셨습니다. 아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의 수를 읽는 눈을 연다는 것. 오늘 읽은 한 구절을 오늘 하루에 한 번 써먹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욕심에 가려 못 보던 수를, 마음을 비워 보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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