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기새 김동호 #2296 — 상처를 주는데 상처받지 않는 힘

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96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45장 4~5절 —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우리가 잘 알고 또 좋아하는 로마서 8장 28절로 문을 여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리고 이 말씀의 가장 대표적인 증인으로 요셉을 세우십니다. 요셉은 열일곱에 보디발 장군의 집에 종으로 팔려 갔습니다. 종은 인생에 닥칠 수 있는 마지막, 정말 막장 같은 자리입니다. 거기가 끝인 줄 알았는데 종살이에서 인정받아 좀 살 만해지니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왕의 죄수를 가두는 옥에 갇힙니다. 더 나갈 데가 없는 끝장. 그게 열일곱부터 서른까지, 청년의 꿈이 전부 좌절된 13년이었습니다.

그 모든 고난의 원인은 형들이었습니다. 상처가 크면 클수록, 원한이 크면 클수록 사람은 복수의 마음을 갖기 마련입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요셉은 복수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의 자리에서 형들과 맞닥뜨립니다. 형들이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런데 요셉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근심하지 말라, 한탄하지 말라였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그러셨다고. 목사님은 못을 박으십니다. 요셉이 용서한 것은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 원한은 성격 좋아서 풀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다만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목사님 자신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학교 강당을 빌려 교회를 하다가 교인이 꽤 늘었을 때 강당을 비워 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학교에 대한 고마움이 더 크지만 갈 데도 없는 교회를 나가라 하니 참 섭섭했다고 하십니다. 궁지로 내몬 상황이었으니까요. 그 후 대학 두 곳에서 초청을 받았는데, 그 길마저 막혔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들에게서 막혔을 때는 “가서 한번 싸워 볼까” 하는 분한 마음도 솔직히 있었다고 고백하십니다.

그런데 요즘은 전혀 다르다고 하십니다. 강당을 비워 달라고 했던 학교가 너무 고맙고, 대학으로 가려는 길을 막아 준 그분들이 너무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내보내지 않았더라면, 막지 않았더라면 목사님이 요즘 ‘신의 한 수’라고 부르는 높은뜻 교회의 건강한 분립과 건강한 성장은 없었을 거라고요. 젊어서 미국의 한 ‘포도원 교회’에서 받은 감동 — 들판에 홀로 우뚝 솟은 나무가 아니라 옆으로 퍼져 나가 온 지면을 덮는 포도나무 같은 교회 — 그 꿈을 바로 그 섭섭했던 사람들이 이뤄 준 셈입니다. 우뚝 선 대형교회 하나 대신 열여섯 교회가 퍼져 나갔으니, 원한이 없고 도리어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손녀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닌 손녀들이 왕따를 당하고 어떤 아이가 볼펜으로 찌르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둘째 손녀의 일이 발각돼 양가 부모를 부르고 잘 해결된 뒤 돌아오는 길, 며느리가 큰딸에게 “너는 이런 일 겪지 않았니?” 묻자 겪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엄마한테 얘기 안 했니?” 그 대답이 기가 막혔습니다. “다 잊어버렸어.” 큰손녀는 미국 가기 전 1년 반을 증조할머니부터 삼촌까지 4대 여덟 식구와 한 아파트에서 살며 온 사랑을 받았던 아이입니다. 사랑을 충분히 받은 사람은 어떤 역경에도 상처받지 않고 잘 이겨내더라고 하십니다. 그 아이는 한국에 와서도 말이 서툴러 왕따를 당한 듯한데, 6학년 때 전교 부회장이 되었습니다.

내게 남은 것

맺음말이 오래 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상처를 안 받는 게 아니라, 상처받는 일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건 똑같이 있는데 상처를 주는데 상처를 안 받는 거예요.” 일터에서 억울한 일은 줄지 않습니다. 밀려나고, 막히고, 공이 엉뚱한 사람에게 가는 일은 계속 생깁니다. 오늘 말씀은 그 사건을 없애 주겠다고 하지 않고, 그 사건을 해석하는 눈을 주겠다고 합니다. 당신들이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는 해석. 요셉은 그 해석 하나로 13년치 원한을 내려놓았습니다.

목사님의 강당 이야기가 특히 뼈아프게 좋았습니다. 그때는 궁지였고 분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 밀어냄이 평생 꿈꾸던 포도나무 교회를 만든 입구였다는 것. 지금 내가 “왜 하필 나한테” 하고 있는 그 일도, 나중에 “그때 막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로 바뀔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성경을 배우는 이유를 예방주사라고 하셨습니다. 당하고 나서 배우면 늦으니, 미리 맞아 두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오늘 할 일은 분명합니다. 억울한 일을 만났을 때 복수의 시나리오를 짜는 대신, “하나님이 이걸 가지고 뭘 만드시려 그러나” 하고 기대하는 쪽으로 생각의 방향을 트는 것. 그리고 내 곁의 사람에게는 손녀를 품었던 그 집처럼 충분한 사랑을 주는 것. 사랑을 충분히 받은 사람이 상처를 흘려보낼 힘을 갖는다니, 누군가의 상처 극복력은 결국 내가 평소에 준 사랑의 두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억울한 일 앞에서 복수를 계산하지 말고, 하나님이 이것으로 무엇을 이루실지 기대하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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