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54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25장 7~10절 — 아브라함이 향년 175세에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고,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막벨라 굴에 장사합니다. 믿음의 조상도 결국 굴 하나에 묻혔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오늘, 그 굴에 묻히지 않은 것을 이야기하십니다.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목소리 이야기로 문을 여십니다. 어제는 정말 힘들었는데 성도들의 기도로 오늘은 조금 풀린 것 같다고, 건강 특히 목소리를 잃지 않도록 계속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십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끝맺음’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목사님은 목회를 하실 때 늘 은퇴를 먼저 생각하며 목회하려 애쓰셨답니다. 아무리 성공적이고 훌륭한 목회였다 해도 끝맺음이 아름답지 못하면 모든 성공과 수고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수없이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끝맺음은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하십니다. 좋은 끝맺음에 대한 욕심이 있어야 하고, 구체적인 계획과 설계가 있어야 하고, 훈련과 노력과 기도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회 선배 목사님 한 분과 식사하다가 들으신 말씀이 오래 남으셨답니다. “은퇴식하고 다음 날 일어났더니 갈 데가 없어.” 목사님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걸 그날 아시면 어떡하십니까, 그건 미리 정해져 있던 건데. 은퇴하는 날은 예고된 날이었는데, 준비 없이 그날을 맞으면 좋은 끝맺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은퇴보다 훨씬 더 큰 끝맺음이 나옵니다. 죽음입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정해져 있는 삶의 끝맺음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자기가 죽는다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지만, 생각도 안 하고 준비도 안 하다가 갑자기 죽음을 당하면 인생 전체를 그르치는 큰 우를 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믿음의 조상이라 칭찬받던 그 사람도 죽어, 먼저 간 아내 사라가 있는 막벨라 굴에 묻혔습니다.
그 굴에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죽음을 “세상에서 가치 있고 쓸데 있는 것들을 순식간에 쓸데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 같은 힘”이라고 표현하십니다. 살아 있는 동안 돈은 쓸 데가 참 많고 유용하고 그래서 가치가 있지만, 죽으면 순간에 쓸 수 없어지고 무가치해집니다. 지식도 권력도 지위도 똑같습니다. 목사님은 어린 시절 돈 줍는 꿈 이야기를 다시 꺼내십니다. 용돈을 못 받던 아이가 꿈에서 길에 떨어진 돈을 무더기로 줍고 또 줍는데, 깨고 나면 억울하기가 한이 없었다고. 죽음의 순간이 꼭 그 꿈 깬 것 같으리라는 겁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막벨라 굴까지 가지고 갈 수 있었던 것, 죽음으로도 소멸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게 삶이었습니다. 잘 산 삶, 믿음의 삶은 죽음으로도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하실 때 군말 없이 떠난 믿음, 아들 이삭을 바치라 하실 때 토 달지 않고 순종하려 했던 믿음, 종 엘리에셀도 자기 아들처럼 대우할 줄 알았던 인격, 사람 덕 안 보고 하나님 덕만 보려 했던 삶의 모범 — 그것들은 죽지 않고 지금 우리에게까지 흘러왔습니다. 목사님은 영생이란 호흡이 끊어지지 않는 것만 뜻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잘 산 삶이 영생합니다.
여기서 짐 엘리엇 선교사가 등장합니다. 에콰도르에서 스물아홉에 칼과 창에 처참히 순교당한 선교사인데, 시신을 발견한 사람들이 놀란 것은 총이 있었는데도 저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총을 쏘면 생명은 건질지 몰라도 저들이 복음을 다시는 받아들이지 않고 더 완고해질까 봐 그냥 죽은 것입니다. 그가 20대에 일기장에 썼다는 말 —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언젠가는 놓아야 할 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목사님은 이 말을 뒤집어 주십니다. 언젠가는 놓아야 할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다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을 잃고 사는 사람은, 결코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다. 이어서 ‘트리플 서티’ 이야기 — 인생 90년을 30년씩 셋으로 나눠 공부하고, 벌고, 마지막 30년은 잘 쓰다 죽자는 것인데, 우리는 90년 내내 벌기만 하다가 쓰지도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올해 일흔여섯이신 목사님은 “10년 후 나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지난 10년과 앞으로의 10년은 속도가 다를 것”이라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인데 없어질 것들에 연연해 욕심부린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다고 하십니다.
내게 남은 것
일하는 사람에게 오늘 말씀의 첫 번째 칼날은 ‘끝맺음을 미리 계획하라’입니다. 은퇴 다음 날 아침에야 갈 데가 없다는 걸 아신 그 선배 목사님 이야기가 남 얘기 같지 않았습니다. 회사도, 직책도, 지금 붙들고 있는 프로젝트도 언젠가 반드시 끝납니다. 그 날짜가 정해져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오늘의 성과만 붙들고 끝을 설계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은퇴를 준비했기 때문에 도리어 반듯한 목회를 할 기회를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끝을 생각하는 것이 현재를 도피하는 게 아니라, 현재를 바르게 만드는 힘이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무엇이 남는가’입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뒤 그의 재산이 얼마였는지, 종이 몇 명이었는지, 땅이 몇 평이었는지는 성경에 한 줄도 없습니다. 남은 것은 그가 어떻게 살았느냐뿐입니다. 내 일의 결과도 그렇겠지요. 몇 년 뒤 숫자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내가 그 자리에서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 정직했는지, 하나님 덕을 보려 했는지 사람 덕을 보려 했는지만 남을 것입니다. 엘리에셀을 아들처럼 대우한 그 태도가 4천 년을 건너온 것처럼요.
세 번째는 짐 엘리엇의 문장을 뒤집은 그 말입니다. 나는 오늘 무엇을 놓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는가. 그 버팀 때문에 정작 잃고 있는 게 무엇인가. 언젠가는 반드시 놓아야 할 것을 끝까지 손에 쥐고 있다가 꿈 깬 아이처럼 빈손이 되는 것 — 그것이 어리석음의 정확한 정의였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오늘을 우울하게 만들지 않고, 오늘을 정확하게 만들어 준다는 걸 배웁니다.
오늘의 기도: 죽음을 기억하게 하시고, 죽음 후에도 남을 삶을 오늘 살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 His CCM 기도 피아노 (24시간 라디오): https://www.youtube.com/live/9STrfMdNiws
- 앨범 «Grace Piano Prayer»: https://open.spotify.com/artist/6HOuDJojMSQHSHzIOt83sn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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