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87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39장 21~23절 — 요셉이 왕의 죄수를 가두는 옥에 갇혔는데, 성경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아직 애틀랜타에 계십니다. 콜롬비아와 애틀랜타 두 곳의 집회를 마치고 수요일 비행기로 돌아오신다는 소식으로 시작하시면서, 어디를 가든지 날기새를 녹화할 수 있고 가족들을 만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어디를 가든지’가 그대로 오늘 설교의 제목이 됩니다.
이어지는 것은 폐암 수술 후 첫 CT 이야기입니다. 왼쪽 폐 절반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으셨고, 암 환자는 수술 후에도 계속 CT와 MRI를 찍어야 합니다. 목사님은 “CT 찍고 결과 들으러 가는 날이 제일 심란한 날”이라고 하십니다. 큰 시험장에 올라선 사람 같다고요. 그런데 첫 촬영에서 수술한 자리에 둥그런 것이 보였고, 의사 얼굴이 굳어지며 재촬영을 하게 됩니다. 열흘을 기다리는 그 시간이 얼마나 불안하고 우울했는지, 그러다 문득 화가 나셨답니다. “나는 목사인데, 예수 믿는 사람인데 이렇게 무너질 수가 있나.”
남양주 황토방에서 요양하시던 때였습니다. 숲속에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 소파에 앉아 “평화 평화 하늘에서 내려오네” 찬송이 떠올랐고, 저절로 기도가 나왔다고 하십니다. “하나님, 제 속에는 지금 평화의 힘과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평안을 비처럼 내려 주시면 제가 맞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속으로 부르던 또 하나의 찬송이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 어디든지 예수 함께 가려네”였습니다. 늘 부르던 찬송인데 그날따라 은혜가 되더랍니다. 목사님은 재발이 아닌 쪽 길로 가야만 겁이 없는데, 이 찬송의 작사자는 어디를 가도 겁이 없다고 노래합니다. 쉽게 말해 “재발되었습니다”라는 무서운 길에서도 겁 없다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 —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함께하신다면 두렵지 않다는 것. 그게 턱 믿어지는 순간, 마음을 짓누르던 우울과 불안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고 하십니다.
그 장면을 목사님은 윤동주의 시 「초 한 대」로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을 초 한 대에 비유한 시인데,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에 생명인 심지, 그 연약한 데 불을 붙였더니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쳤다는 것입니다. 암흑을 돈으로 물리칠 수 있습니까, 절망을 인간의 지혜로 물리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빛이신 예수님이 불을 켜시니 어둠이 도망가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병원에는 철없는 아이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가셨고, 결과는 재발이 아니라 염증이 가라앉은 것이었습니다. 옆에 계시던 의사 집사님이 “오실 때 많이 불안하셨죠?” 묻자 “아니요” 하셨고, 집사님은 “그런 게 어딨어요?” 했다지요. 맞는 말이지만, 정말 불안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뒤로 마음에 큰 불안이 없어져 잠을 잘 자게 되었고, 그게 건강으로 이어졌다고 고백하십니다.
여기서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요셉은 종으로 팔려갔고,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모함을 받아 옥에까지 갇혔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태연하게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다”,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라고 씁니다. 목사님은 ‘범사’라는 말이 유난히 마음에 들어왔다고 하십니다. 좋은 일만 있으면 그건 범사가 아니라 그냥 좋은 일이고, 범사는 좋은 일과 좋지 않은 일을 다 포함하는 말입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에게 나쁜 일은 그냥 나쁜 일이지만,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힘든 일도 결국 좋은 일이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어디를 가든지 형통케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수가 되었는데도 간수장의 눈에 들어 옥중의 제반 사무를 맡고 인정받는 삶을 살지 않았느냐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수술실 간증을 다시 들려주십니다. 첫 수술 때 “하나님, 다녀오겠습니다” 했더니 “같이 갈 건데” 하셨고, 몇 년 뒤 갑상선암 수술 때는 “같이 가실 거지요?” 했더니 “그럼 내가 같이 가야지” 하는 마음을 주시더랍니다. 수술대에 누웠는데 병원 천장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Do not fear, for I am with you)”가 적혀 있었다고요. 고난의 길을 갈지 말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지만, 예수님 손을 붙잡고 가는 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내가 하나님 손을 놓아서 문제지, 하나님이 내 손을 놓으실 리는 없다는 말씀이 오래 남습니다.
내게 남은 것
일하면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는 곳이 ‘어느 쪽으로 가느냐’입니다. 이 프로젝트가 되느냐 엎어지느냐, 이번 평가가 좋게 나오느냐 나쁘게 나오느냐. 늘 두 갈래 길 앞에 서서, 한쪽으로 가야만 겁이 없고 다른 쪽으로 가면 끝장이라고 생각하며 삽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니까 늘 두려운” 상태인 겁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길을 바꾸라고 하지 않고, 함께 가는 분을 보라고 합니다. 어디로 가느냐보다 누구와 가느냐.
‘범사에 형통’이라는 말도 오늘 다시 읽혔습니다. 저는 그동안 형통을 ‘잘 풀리는 것’으로만 이해했는데, 요셉의 형통은 감옥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옥에 갇힌 상태 그대로, 거기서 맡겨진 일을 성실히 처리하는 사람이 되는 것 — 그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형통이었습니다. 상황이 바뀌어야만 내 일이 의미 있어지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맡겨진 제반 사무를 감당하는 것이 이미 형통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불안이 없어지니 잠을 잘 자게 되고 그래서 건강해지더라는 대목. 믿음은 추상적인 결심이 아니라 아주 실제적인 평안으로 몸에 나타난다는 증언입니다. 결과를 모른 채 기다려야 하는 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불안을 이겨내는 게 아니라 손을 놓지 않는 것이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어디로 가게 되든, 주님 손을 놓지 않는 오늘 하루 되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 His CCM 기도 피아노 (24시간 라디오): https://www.youtube.com/@hisccm/live
- 앨범 «Grace Piano Prayer»: https://open.spotify.com/artist/6HOuDJojMSQHSHzIOt83sn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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