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기새 김동호 #2286 — 어떤 처지에서도 잘 사는 힘

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86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39장 19~23절 —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요셉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옥에 갇힙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감옥 안에서도 똑같이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예레미야의 질문에서 출발하십니다. 예레미야 12장 1절, “왜 악인이 형통하고 하나님의 백성은 이렇게 환난을 당합니까?” 우리가 흔히 품는 그 보편적인 질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대답 대신 질문으로 되물으십니다. 예레미야 12장 5절, “내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하려느냐?” 목사님은 이 질문 속에 하나님의 답이 들어 있다고 하십니다. 나는 너를 말과 겨루어도 이기는 사람으로,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도 능히 살아나는 강한 사람으로 훈련시키고 싶다 — 그래서 이 고난을 잠시 주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중요한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생생한 예화가 나옵니다. 둘째 아들을 훈련소에 데려다주던 날, 뒷자리의 친구가 “군대는 요령이야, 집합하면 앞에도 뒤에도 서지 말고 가운데 숨어”라고 하더랍니다. 목사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답니다. “이 자식들아, 네가 무슨 미꾸라지 새끼냐. 숨으면 매는 몇 대 덜 맞을지 몰라도 정신이 나약해져서 더 힘들 거야. 집합하면 앞으로 튀어나가라. 정면으로 돌파해.” 그 말을 마음에 새긴 아들은 최전방 수색정찰대 유격 조교까지 했고, 몇 달 뒤 이런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아빠, 유격 재밌어요.” 무서운 것을 정면으로 돌파하니 나중엔 그것이 재미있는 강인한 사람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교회 이야기가 나옵니다. 학교 강당을 빌려 시작한 교회가 부흥하자, 학교는 교회를 ‘학교에 소속된 교회’로 인식하고 이것저것 지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은 순종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교회’인데 목사도, 장로도, 헌금 많이 한 사람도, 학교도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나가 달라는 공문이 왔고, 수천 명 규모의 교회가 옮겨갈 예배처소는 없었습니다. 장군 부르면 피할 길이 없는 외통수였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멍군하고 받으셨습니다. “교회를 안 하면 안 했지, 학교가 주인인 교회는 할 수 없다.” 길바닥에서 예배드리자, 그러면 교회 이름을 ‘높은뜻 광야교회’로 바꾸자고 하셨을 때 교인들이 박수 치고 소리 지르고, 어떤 청년들은 울면서 “쫓겨나게 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더랍니다.

외통수인 줄 알았는데 거기 신의 한 수가 있었습니다. 그 일로 교회가 네 교회로 분립되었고, 지금은 열여섯 교회로 나뉘어 다 건강하게 성장했습니다. 피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꾀부리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했을 때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승리를 맛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미신과 신앙을 이렇게 가르십니다. 미신은 ‘팔자를 고치는’ 종교입니다. 굿하고 부적 붙여서 환경을 바꿔 달라고, 결국 환경을 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우리에 양이 없어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기뻐하며 사슴같이 높은 곳을 다니게 하시리라는 하박국의 고백, “부한 데도 처할 줄 알고 비천한 데도 처할 줄 안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다 그것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하늘나라요,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든지 내 영혼은 늘 편하다는 찬송도 같은 고백입니다.

그 대표적인 모범이 요셉입니다. 요셉은 채색옷 입고 꿈꾸던 사람, 보통 그런 사람은 조금만 어려우면 낙심하고 무너집니다. 그런데 요셉은 좌절을 모릅니다. 억울하게 종으로 팔려가서도 종노릇을 잘해 보디발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형통한 자”라고 인정했고, 더한 모함으로 왕의 죄수를 가두는 — 대부분 죽어 나오는 — 옥에 갇혔는데도 죄수 노릇을 또 잘해서 간수장의 은혜를 입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다 건강하고 다 부자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 자신도 암을 겪으셨습니다. 환경을 바꿔 달라는 기도가 잘못은 아니고 하나님이 들어주시기도 하지만,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정신은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뚫고 나가는 것, 그래서 언제나 잘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게 남은 것

“암에 걸려 죽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암에게 지지는 말자. 암 때문에 인생이 무너지지는 말자. 하루를 살아도 잘 살자.” 목사님의 이 말이 오래 남습니다. 일터에서도 우리는 자꾸 ‘환경이 바뀌면’을 전제로 삽니다. 이 프로젝트만 끝나면, 저 사람만 바뀌면, 자리가 좀 풀리면 그때 잘하겠다고 미룹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보행자와 달릴 때만 이기는 실력은 실력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평안한 땅에서만 무사한 믿음은 아직 믿음이 아니라고.

요셉이 보여준 것은 결국 주어진 자리의 역할을 잘 해내는 것이었습니다. 종이 되면 종노릇을 잘하고, 억울한 죄수가 되어도 죄수 노릇을 잘했습니다. 억울함을 따지느라 그 자리를 망치지 않았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부서, 내가 선택하지 않은 상사, 내 책임이 아닌 실패의 뒷수습 — 그런 자리에서 “이건 내 자리가 아니야” 하며 가운데 숨는 대신 앞으로 튀어나가는 것. 그게 정면 돌파였습니다.

그리고 외통수 앞에서 타협하지 않았을 때 신의 한 수가 열렸다는 이야기. 원칙을 지키면 손해 본다고 계산되는 순간이 일하다 보면 반드시 옵니다. 그때 “안 하면 안 했지”라고 말할 수 있는 고집이 있는가. 쉬지 않고 기도하는 믿음이 있으면 어떤 형편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다는 말씀을, 오늘 하루 작은 자리에서부터 흉내라도 내보려 합니다.

오늘의 기도: 환경을 바꿔 달라 조르기 전에, 그 환경을 뛰어넘을 힘을 구하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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