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84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39장 7~10절 —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합니다. 요셉은 거절하며 말합니다. “그가 어찌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본문은 그 유혹이 한 번이 아니라 날마다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세상의 많은 유혹 가운데 가장 이기기 어려운 것이 성적인 유혹이라는 말로 시작하십니다. 요셉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무게는 ‘한 번 이겼다’가 아니라 ‘날마다 청하였으나 듣지 아니하였다’에 있습니다. 끈질긴 유혹을 끈질기게 이겨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어떻게 그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 목사님은 오늘 말씀을 읽으며 두 가지 요인을 발견하셨다고 하십니다.
첫째는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라는 인식입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은밀하게 유혹했지만, 요셉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그런 행위를 할 수 없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우리가 죄를 짓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하나님을 망각하기 때문”이라고 짚으십니다. 하나님이 못 보신다, 안 보신다, 모르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온 예화가 아프게 찌릅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휴대폰을 놓고 가도, 지갑을 놓고 가도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외국 사람들이 놀란다지요. 도덕성이 높아진 덕도 있겠지만 CCTV 카메라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목사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방에서 다 보고 있으니 걸릴 테고, 걸리면 벌을 받을 테니까요. 그런데 CCTV는 의식해서 범죄를 덜 하면서, 하나님은 못 보고 계시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냐는 것입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면서 사실은 안 믿는 것, 못 믿는 것 아니냐고 하십니다.
둘째는 이번에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온 단어, “큰 악“입니다. 요셉은 성적인 타락을 ‘큰 악’으로 인식했습니다. 어떤 죄가 큰 죄인지 아닌지는 그 죄에 따르는 형량을 보면 안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성적 타락의 형벌은 무엇일까. 목사님은 세 가지를 꼽으십니다. 첫째, 사랑을 잃습니다. 1991년 처음 중국에 가 자금성을 둘러볼 때, 뒤따라오던 한국 여행객이 “중국 황제는 부인이 3천 명이었대” 하자 다른 사람이 “와, 되게 행복했겠다” 하며 키득거리더랍니다. 그 말이 하루 종일 맴돌았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생각은 정반대였습니다. 사랑은 귀한 것이고, 귀한 것은 흔하지 않습니다. 흔한 것은 천합니다. 부인이 3천 명이면 사랑이 3천 개였다는 뜻이고, 그러면 그것은 이미 하찮은 것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거기엔 쾌락만 있고 진정한 사랑은 없으니 얼마나 외로웠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때 어린 자녀들에게 편지를 쓰시며 “아빠는 엄마 한 여자만 사랑해. 그래서 중국 황제보다 더 행복해. 너희도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고 살거라” 하셨다고 합니다.
둘째, 가정을 잃습니다. 아내를, 남편을, 자식을 잃습니다. 목사님은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이 가정이고, 하나님께 받은 가장 큰 복 중 하나가 가정의 복이라고 하십니다. 생명보다 귀한 손주가 여섯인데, 성적으로 타락했다면 그 아이들 낯을 어떻게 보고 살겠느냐, 숨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게 얼마나 큰 벌이냐고 하십니다. 셋째, 평생 쌓은 일과 신뢰를 잃습니다. 목회는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운 때도 있었지만 다시 하라면 두 번 생각 않고 하겠다 할 만큼 큰 축복이었고, 은퇴 후 날기새도 축복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한순간에 “저 인간은 말만 저렇게 하지” 소리를 듣게 되고, 그 모든 신뢰가 무너집니다. 목사님은 사탄의 유혹을 늘 덫이라 설명해 오셨는데, 성적 유혹은 가장 큰 미끼라고 하십니다. 물면 걸립니다. 덫에 걸린 짐승처럼 됩니다.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가 이것을 큰 악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다 그러고 사는데, 안 그런 사람이 요즘 어디 있어” 하며 쉽게 넘어지지만, 막상 떨어지는 형벌은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사랑도, 가정도, 자식도, 평생의 업적과 존경도 한꺼번에 무너집니다. 마지막에 목사님은 십계명의 “간음하지 말라”와, 다른 죄는 몸 밖에서 짓지만 성적인 죄는 몸 안에 짓는 죄라는 가르침을 덧붙이십니다.
내게 남은 것
CCTV 이야기가 오래 남습니다. 저도 결국 ‘누가 보느냐’로 행동을 조절하며 사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회사 메신저는 기록이 남으니 조심하고, 경비 처리는 증빙이 남으니 정직하고, 아무도 확인하지 않는 자리에서는 조금 느슨해집니다. 그건 믿음이 아니라 계산입니다. 요셉이 이긴 힘은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금 보고 계신다는 감각이었습니다. 믿는다고 말하면서 하나님만 예외로 두는 삶이 가장 어리석다는 지적 앞에 할 말이 없습니다.
또 하나는 ‘큰 악’이라는 인식입니다. 세상이 가볍게 여기면 나도 가볍게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가볍게 여겨 넘어졌을 때 치르는 값은 전혀 가볍지 않습니다. 사랑, 가정, 자식 앞에서의 떳떳함, 평생 쌓아온 일과 신뢰 — 한 번에 다 날아갑니다. 일에서도 똑같습니다. 작아 보이는 선 하나를 넘는 순간, 오래 쌓은 평판이 통째로 무너집니다. 덫은 미끼가 커서 무서운 게 아니라 물면 걸리기 때문에 무섭습니다.
그래서 오늘 결론은 단순합니다. 귀한 것은 흔하지 않습니다. 하나를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3천을 가진 황제보다 행복하다는 말씀을, 오늘 하루 일터와 가정에서 붙들고 살아야겠습니다. 요셉처럼 거절하고, 아예 함께 있지도 않는 쪽을 택하는 것까지가 지혜겠지요.
오늘의 기도: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잊지 않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 His CCM 기도 피아노 (24시간 라디오): https://www.youtube.com/@hisccm/live
- 앨범 «Grace Piano Prayer»: https://open.spotify.com/artist/6HOuDJojMSQHSHzIOt83sn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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