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75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35장 16~22절 —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죽고, 야곱이 그 무덤에 비를 세우고,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한 일이 짧게 지나갑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36장은 에서의 족보입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 어디로 가서 살았고, 무엇을 소유했는지가 빠짐없이 적혀 있습니다.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오늘 아주 솔직하게 시작하십니다. “오늘 날기새 준비하면서 조금 저는 막막했습니다.” 날마다 기막힌 새벽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성경 속에서 날마다 기막힌 은혜를 찾는 일이 늘 쉽지만은 않다는 고백입니다. 라헬의 죽음, 르우벤의 일, 그리고 36장 가득한 에서의 족보. 이 말씀으로 무슨 설교를 할 수 있을까, 한참을 헤매셨다고 합니다. 마태복음의 족보를 처음 읽을 때 느꼈던 그 막막함과 비슷했다고요.
특히 목사님이 꼽으신 구절은 36장에 나오는 한 문장입니다. 시브온의 아들 아나가 광야에서 나귀를 치다가 온천을 발견했다는 기록. 도대체 이런 걸 왜 성경에 남겨 놓으셨을까. 나는 관심도 없는 일인데, 에서가 누구를 낳았든 온천을 발견했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굳이 기록해서 우리에게 읽히실까. 그 질문을 오래 붙들고 계시다가 발견하신 답이 오늘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
누가 누구를 낳았는지, 어쩌다 온천을 찾게 되었는지, 그 땅이 어디 땅인지, 누가 무엇을 하고 무슨 짓을 했는지 하나님은 전부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십니다. 왜 아실까? 어떻게 다 아실까? 전능하시기 때문에 아실 수 있지요.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관심이고, 그 관심에 전능이 더해지니 모르시는 것이 하나도 없는 전지하심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머리털까지 세신다고 하신 그 말씀이 바로 그 관심의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알고 계실까요. 우리의 아픔, 괴로움, 슬픔,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지를 다 아실 뿐 아니라 함께 아파하신다고 목사님은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폐암 수술 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취에서 깨어 병실로 올라와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마음에 주신 말씀이 “내 백성을 위로하라”였다고요. 누가 누구를 위로하느냐고 되물었지만, ‘내 백성’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박혔답니다. 하나님이 아파하는 사람, 고난당한 사람을 ‘내 백성’이라 부르시며 함께 위로하자고 부르신 것 — 그렇게 시작된 것이 지난 토요일 천안에서 열두 번째로 열린 CMP 집회입니다.
이어서 아는 것과 능력의 차이를 짚으십니다. 부모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의 모든 것을 압니다. 그러나 안다고 다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아시는데 힘이 없어 건지시지 못할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러니 고난 중에 “하나님이 내 아픔을 아실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오늘 말씀이 주는 답은 하나입니다. “난 다 알고 있어.”
그리고 뒷면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르우벤이 아무도 모를 줄 알고 저지른 죄도 알고 계셨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며 내세운 논리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지만, 요셉은 하나님이 보고 계신데 어떻게 득죄하겠느냐고 답했습니다. 목사님은 요즘 우리나라가 정직한 나라로 소개되는 이유가 실은 카메라 때문이라고 뼈아프게 지적하십니다. 세상 사람들도 CCTV 하나에 죄를 두려워하는데,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하나님이 보고 계신 줄 모른다면 말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내게 남은 것
일을 하다 보면 아무도 안 알아주는 시간이 길게 이어질 때가 있습니다. 밤새 붙든 문제, 조용히 수습한 사고, 말하지 않은 억울함 같은 것들. 오늘 말씀은 광야에서 나귀를 치다 온천을 발견한 한 사람의 일까지 기록해 두신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사소한 일을 하나님은 굳이 적어 두셨습니다. 그렇다면 내 하루의 사소함도 그분의 장부에는 이미 기록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무서운 말씀이기도 합니다. 카메라 없는 곳에서의 나, 아무도 확인하지 않을 숫자와 보고서, 쥐도 새도 모를 것 같은 편법 앞에서 —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사실 하나면 충분합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이것을 아는 것이 믿음이고, 그 믿음이 삶을 건강하고 튼튼하고 깨끗하게 보존하는 지혜입니다.
막내아들이 어버이날 편지에 “나까지 낳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썼다는 이야기가 오래 남습니다. 부모에게 ‘나까지’는 없습니다. 첫째나 둘째나 셋째나 똑같이 사랑할 뿐입니다. 그 수많은 사람 중에 나까지 아실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오늘 답은 분명합니다. 아신다, 그리고 함께 아파하신다, 그리고 결국 건지신다.
오늘의 기도: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주님이 보고 계심을 잊지 않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 His CCM 기도 피아노 (24시간 라디오): https://www.youtube.com/@hisccm/live
- 앨범 «Grace Piano Prayer»: https://open.spotify.com/artist/6HOuDJojMSQHSHzIOt83sn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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