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81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39장 1~3절 —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고, 친위대장 보디발이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삽니다. 그런데 성경은 곧바로 이렇게 잇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말씀의 흐름
어제는 채색옷을 입고 꿈을 꾸던 요셉이 꿈과 정반대인 보디발 장군의 종이 되었는데도 성경이 “형통한 자”라고 말하는 그 뜻을 살폈습니다. 목사님은 처음엔 그 말씀이 이해가 안 갔다고 하십니다. 요셉이 가장 비참한 자리에 처했는데 성경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형통하게 되었다고 쓴다는 것입니다. 결국 요셉의 결국을 알기에 그 말씀이 옳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고요.
그런데 오늘은 본문 속에 또 하나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고 짚으십니다. 보디발 장군이 그것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집에 종으로 팔려 온 사람을 보고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구나, 형통한 자구나” 생각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지요. 목사님이 곰곰이 생각해 내린 답은 이렇습니다. 요셉이 종으로 팔려 왔어도 기죽거나 낙망하거나 절망하거나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종노릇을 잘했다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요셉이 종노릇을 잘하니 그 집이 요셉 때문에 복을 받게 되었고, 보디발의 눈에는 “세상에 저런 복덩어리가 우리 집에 들어왔다니” 싶었을 거라는 겁니다.
보디발 입장에서도 이해가 안 되긴 마찬가지입니다. 억울하게 팔려 온 노예, 돈도 없고 자유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기죽지 않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며 잘 사는가. 그 이유가 하나님 때문이라는 것을 보디발이 알게 된 것이고, 그래서 주인조차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형통한 자”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 것입니다. 목사님은 여기서 바울의 고백을 꺼내십니다. 부한 데 처할 줄 알고 비천한 데 처할 줄 안다, 자족하기를 배웠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부한 데도 처할 줄 모르고 비천한 데도 처할 줄 몰라서, 부해도 잘못 살고 비천해도 잘못 산다는 것입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부를 단순한 축복이 아니라 은사로 이해해 잘 활용하고, 비천함에 처해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잘 삽니다. 왕 노릇도 잘하지만 종노릇도 잘하는 것, 그게 믿음의 능력이라고 하십니다. 요셉은 나중에 총리 일도 참 잘했지만,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종노릇도 잘했다는 것이 진짜 능력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고는 당신의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암 수술을 받고 왔을 때 하나님이 제일 먼저 주신 말씀이 “내 백성을 위로하라”였고, 그래서 CMP(Comfort My People) 집회를 구상해 12회째까지 진행하셨습니다. 400여 명이 모인 첫 집회에서 가장 힘든 환자는 정작 설교자 자신이었다고 하십니다. 그날 설교 제목이 “믿음의 가오”였습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영화 대사를 패러디해서, “우리가 암에 걸렸지 가오가 없냐, 암에 걸릴 수는 있고 죽을 수도 있지만 암에게 지지는 말자”고 하셨답니다. 두 번째 집회 때는 “암의 방언”이라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암에 걸리면 원망하고 짜증 내고 우울해하는 ‘암의 언어’가 나오는 게 당연한데, 그 자리에서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이 성령 받은 자의 방언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집회에 늘 부인과 따님과 함께 오시던 환우 한 분이 결국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따님이 목사님께 보낸 메시지가 이랬습니다. “목사님, 날기새와 CMP 집회 때문에 우리 아버지가 말기암 고통 중에도 천국처럼 지내다 가셨습니다.” 목사님은 이게 바로 믿음의 가오라고 하십니다. 그런 모습을 본 가족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와 함께 하셔서 형통케 하셨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예수 믿는다고 다 부자 되고 다 건강하고 사업마다 성공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비천한 자리에서도 처할 줄 아는 능력을 믿음으로 가지면, 사람들이 보고 인정하게 됩니다. 저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사람이라고.
내게 남은 것
성과가 좋을 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말을 듣는 건 사실 쉽습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요셉이 총리가 되어서 그 소리를 듣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어려운 건 지금 내가 선택권이 거의 없는 자리, 인정받지 못하는 자리, 내 꿈과 정반대인 자리에 있을 때입니다. 그 자리에서 기죽지 않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주변은 결국 알아봅니다. 보디발이 알아본 것은 요셉의 직급이 아니라 요셉의 태도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물어야 할 질문은 “언제 이 자리를 벗어나나”가 아니라 “이 자리에서 나는 종노릇을 잘하고 있나”인 것 같습니다. 내가 맡은 몫 때문에 이 팀이, 이 집이 덕을 보고 있는가. 복덩어리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가. 원망하고 짜증 내는 것이 당연한 상황에서 감사와 찬송이라는 다른 언어를 쓸 수 있는가. 목사님은 그것을 ‘암의 방언’이라 부르셨지만, 각자 자기 자리의 방언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한 데 처할 줄 아는 능력도 따로 배워야 한다는 말씀이 뜨끔했습니다. 잘될 때 그것을 축복으로만 소비하지 않고 은사로 받아 “하나님이 왜 이것을 주셨나”를 묻는 것. 잘될 때나 안 될 때나 무너지지 않는 사람, 그 일관성이 결국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증명하는 방식이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높은 자리에서도, 가장 낮은 자리에서도, 기죽지 않고 제 몫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 His CCM 기도 피아노 (24시간 라디오): https://www.youtube.com/@hisccm/live
- 앨범 «Grace Piano Prayer»: https://open.spotify.com/artist/6HOuDJojMSQHSHzIOt83sn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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