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기새 김동호 #2280 — 불통이 형통의 도구가 된다

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80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39장 1~6절 — 요셉이 애굽으로 끌려가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간 장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로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콜롬비아에서, 주일 새벽에 녹화를 하며 인사를 건네십니다. 월요일 하루 쉬고 차로 네 시간 올라가 애틀랜타에서 또 집회를 하고 다음 주에 귀국하신다고요. 홍길동처럼 돌아다니면서도 가는 곳마다 날기새를 빠뜨리지 않고 할 수 있는 건강이 감사하다는 말씀으로 시작하십니다.

이야기는 성지순례의 기억으로 넘어갑니다. 히브리 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던 교회 청년이 가이드를 맡았는데, 그가 목사님을 제일 먼저 데려간 곳이 유대 광야였습니다. 그리고 물었답니다. “광야를 히브리어로 뭐라 하는지 기억나세요?” 미드바르. 말씀을 뜻하는 ‘다바르’가 들어 있어,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라고요. 흙과 모래와 돌멩이뿐, 풀 한 포기 보기 어려운 그 땅의 이름이 ‘말씀이 있는 곳’이라니. 아무것도 없지만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 — 그래서 모세도, 다윗도, 예수님도 다 이 광야의 훈련장을 거치셨다는 것입니다.

그럼 광야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목사님은 말씀하십니다. 세상 것이 다 끊어져도, 아무것도 없어도 하나님이 계시면 살 수 있다는 것. 그 훈련장을 잘 졸업하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거기서도 살았는데.” 그러니까 광야를 거친 사람은 형통의 능력을 갖게 되는데, 그 형통의 능력이란 모든 것이 다시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어도 살 수 있는 능력입니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우리에 양이 없어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 부한 데도 처할 줄 알고 비천한 데도 처할 줄 알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던 바울의 고백도 바로 그 형통의 능력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입니다. 평생 수도 없이 읽은 본문인데 오늘 새삼스럽게 걸린 대목이 있다고 하십니다. 지금 요셉은 종으로 팔려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형통한 자가 되었다”는 말을 가장 쓸 수 없는 자리가 지금 요셉의 자리인데, 성경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렇게 씁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면 어떻게 종으로 팔려왔으며, 종이 된 마당에 형통은 무슨 형통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요셉의 끝을 압니다. 총리가 되고, 지혜를 받아 큰 흉년을 피하게 하고, 그 일로 자기 가족을 구원한 드라마의 끝을요. 결과를 아는 사람은 이 말씀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종으로 팔려온 그 불통이,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형통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은 목사님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2019년 5월 첫 주, 첫 폐암 수술을 받으러 수술실 침대에 누웠을 때. 아내에게 다녀오겠다 인사하고, 하나님께도 “다녀오겠습니다” 했더니 마음에 이런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같이 갈 건데.” 아내도 아이들도 수술실 문 밖에 서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밖에서 기다리지 않고 함께 들어가신다는 것 — 그게 믿어지자 엄습하던 두려움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2021년 갑상선암 수술 때는 먼저 “같이 가실 거지요?” 여쭈었고, “그럼 같이 가야지” 하는 마음을 받고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환자가 보라고 천장에 써둔 성경 구절이 이랬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I am with you.” 내가 같이 간다 그랬잖아 — 그렇게 들렸고, 모든 불안이 사라졌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암 수술장에서 형통의 능력을 받으신 셈입니다.

내게 남은 것

일이 무너질 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 게 맞나”입니다. 함께 계신다면, 지키신다면, 왜 지금 이 자리인가. 오늘 말씀은 그 질문에 설명을 달아주지 않습니다. 대신 가장 설명이 안 되는 자리에서 성경이 태연하게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쓴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형통의 증거는 상황이 아니라 함께 계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끝을 아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오래 남습니다. 요셉은 자기 이야기의 끝을 몰랐고 우리는 압니다. 지금 내가 통과하는 이 구간도 언젠가 누군가는 끝을 알고 읽게 될 페이지입니다. 그러니 오늘의 불통을 최종 판결로 읽지 않는 것 — 이것이 믿음의 실전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 불통까지도 재료로 쓰셔서 합력하여 선을 만들어 내십니다.

또 하나. 형통의 능력이 “다시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없어도 살 수 있는 것”이라는 정의가 뼈아프게 좋습니다. 저는 늘 회복을 형통이라 불러왔는데, 성경의 형통은 광야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근력이었습니다. 평생 요셉으로 설교하셨지만 이런 설교는 처음이라며, 그래서 ‘날마다 기막힌 새벽’인가 싶다고 웃으시는 대목에서 — 오래 읽은 본문도 오늘 처음처럼 열릴 수 있다는 걸 배웁니다.

오늘의 기도: 설명되지 않는 자리에서도 “함께 가신다”는 그 한마디를 붙들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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