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기새 김동호 #2277 — 절망을 이기는 꿈과 소망

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77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37장 9~11절 — 요셉이 두 번째 꿈을 꾸고 그것을 형들과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아버지는 꾸짖고, 형들은 시기하고, 그러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둡니다.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먼저 질문 하나를 던지십니다. 왜 하나님은 요셉에게 그런 꿈을, 그것도 내용은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꿈을 두 번씩이나 꾸게 하셨을까. 목사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요셉이 앞으로 겪어야 할 수도 없이 많은 절망적인 상황들을 이겨내게 하시려고 미리 심어 주신 꿈이 아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꿈은 꿈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절망을 견딜 힘으로 주어졌다는 읽기입니다.

이어 키에르케고르의 유명한 말이 인용됩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 있다. 그 병의 이름은 절망이다.” 우리가 죽게 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절망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망하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목사님은 솔직하게 “없다고 생각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자기 삶에서 꺼내십니다. 목사 안수를 받던 날 선배 목사님이 하셨던 말 — “난 이제 다 끝나가는데 우리 김 목사는 이제 안수를 받았으니 이거 어쩌니?” 그게 진심이셨다고 합니다. 요즘은 젊은 목회자들을 볼 때마다 그 말이 생각난다고 하십니다. 나는 다 지나왔는데 저 친구들은 지금부터 그 길을 가야 하니 어쩌나.

그런데 목사님은 곧바로 한 발 더 나갑니다. 목회가 어렵다는 건 인정하지만, 목회만 어렵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힘들다는 것이죠. 막내가 빈티지 옷 가게를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했다는 말이 마음에 남아 있다고 하십니다. “아빠, 돈 버는 거 너무 힘들어.” 그리고 그다음 말이 더 와닿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목사들은 그걸 몰라. 교인들이 얼마나 힘들게 돈 벌어서 헌금하는지 그걸 몰라.” 사는 게 다 힘들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수시로 절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골리앗같이 크고 우리는 무장도 할 수 없는 어린 소년 다윗 같으니, 인간은 절망을 숙명처럼 타고난 존재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불교에서 인생을 ‘고해’, 고통의 바다라 부른다는 말이 그렇게 가슴에 와닿는 단어일 수 없다고요. 그 망망대해를 조각배로 건너는 것이 인생이라면, 어떻게 절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절망의 반대편을 봅니다. 절망의 반대는 소망입니다. 소망이 있는 자는 망하지 않고, 꿈이 있는 사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소망의 근거는 무엇인가. 목사님은 하나씩 지워 나가십니다. 돈은 좋지만 엄연한 한계가 있어 궁극적인 소망의 근거가 되지 못하고, 힘 있는 사람의 도움도 유익하지만 소망의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는 소망이 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다 유한하고 한계가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찬송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를 부르십니다.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날이 되어도 내 소망 더욱 크리라 — 소망의 근거는 오직 예수님, 하나님을 믿는 믿음뿐이라는 결론입니다.

그리고 여러 번 하셨다는 그 간증이 다시 나옵니다. 목회하면서 너무 힘들어 죽을 것만 같아 모든 걸 포기하고 절망 속에 있을 때, 물끄러미 십자가를 바라보는데 십자가가 말을 걸어왔다고 합니다. “난 너 죽는 걸 못 봐. 내가 죽고 네가 살아야지. 너 죽고 내가 어떻게 사냐?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는 살릴 거야.” 그게 믿어졌다고 하십니다. 무슨 수가 바로 십자가 아니냐고, 십자가는 사탄이 꼼짝없이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강력한 한 수였다고요. 십자가에 못 박히실 만큼 나를 사랑하시는데 그 사랑에서 나를 끊어낼 수 있는 게 무엇이겠느냐. 그때 벌떡 일어섰다고 하십니다. “내가 이까짓 것 때문에 죽고 망할 사람이라면 우리 예수님 날 위하여 십자가 지시지도 않으셨다.”

마지막으로 목사님은 흑인 영가 「We Shall Overcome」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I Have a Dream」을 드십니다. 그 꿈을 꿀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었는데도 믿음의 사람들은 꿈을 꿨고, 놀랍게도 그 꿈대로 이루어져 흑인 출신 대통령까지 나오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이 꾸게 하신 꿈을 믿었고, 그 믿음이 소망이 되었고, 그 소망 가운데 넘어지지 않았고, 결국 그 꿈을 이루어 생명 구원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이십니다. “성경은 요셉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의 이야기를 써 나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의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하는 승리의 선언이 바로 우리의 꿈이고 믿음이고 소망이라고 맺으십니다.

내게 남은 것

일하면서 제일 무서운 순간은 일이 많은 때가 아니라, 이게 끝이 있기는 한가 싶어지는 때입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그건 피로가 아니라 절망이고,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그런데 오늘 처방은 “힘내라”가 아니었습니다. 소망의 근거를 다시 점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돈도, 힘 있는 사람의 도움도 잠깐은 버티게 해 주지만 한계가 있어서 궁극적인 근거는 못 된다는 말이 아팠습니다. 나는 사실 그 유한한 것들 위에 소망의 닻을 내리고 살다가, 그것이 흔들릴 때마다 함께 흔들려 온 것 같습니다.

“아빠, 돈 버는 거 너무 힘들어”라는 막내의 말과, 목사님이 그 말을 받아 “목회만 어려운 게 아니다, 사는 게 다 힘들다”고 하신 대목도 오래 남습니다. 내 일이 제일 고되다고 여기는 순간 나는 나만 억울한 사람이 되지만, 다들 각자의 고해를 조각배로 건너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동료도 거래처도 가족도 다르게 보입니다. 힘든 게 나만이 아니라는 자각이, 의외로 절망을 눅이는 첫 문장이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가 걸어온 말.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는 살릴 거야.” 오늘 하루 망칠 것 같은 일 앞에서 꺼내 쓸 문장은 이것이면 충분하다고 느꼈습니다. 이까짓 일로 죽고 망할 사람이었으면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지도 않으셨을 테니까요. 꿈은 꿈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이 되었다는 요셉의 결말까지, 오늘은 그 문장을 붙잡고 일하러 갑니다.

오늘의 기도: 절망이 골리앗처럼 클 때, 십자가가 제게 건네신 그 한마디를 기억하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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