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69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32장 1~2절 —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오늘도 목사님은 집회지 호텔 방에서, 깨끗한 벽면을 찾지 못해 커튼을 등지고 앉아 말씀을 전하십니다.
말씀의 흐름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어려운 상황 속에 보냈지만, 그럼에도 큰 재산과 부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막아주시고 기름 부어 축복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시기한 라반의 아들들이, 야곱이 정당하게 수고해서 얻은 재산을 아버지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라 여기기 시작했고, 야곱의 삶은 점점 위험해졌습니다. 결국 도망하듯 라반의 집을 탈출했고 추격이 뒤따랐지만, 하나님이 라반을 막아주셔서 평화의 조약을 맺고 축복까지 받으며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불안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다는 것은 엄청난 위험이 따르는 모험이었고, 무엇보다 형 에서가 자기를 어떻게 대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야곱은 엄청난 재력가였지만, 자신의 돈과 물질로 그 불안을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여기서 늘 하시던 말씀을 다시 꺼내십니다. 진짜 복은 평안이고, 가짜 복·짝퉁 복은 편안이라고. 편안함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편안함은 삶의 근본적인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돈의 한계요 물질의 한계입니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의 사자들이 찾아와 만나 주었습니다. 야곱이 찾아가 만난 것이 아닙니다. 20년 전 벧엘에서도 그랬습니다. 도망길에 돌을 베고 잠들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 축복하셨고, 야곱은 “여기도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 그곳을 하나님의 집, 벧엘이라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임마누엘의 믿음 — 그 믿음 때문에 야곱은 험난한 20년을 굴하지 않고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하나임,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군대는 나라를 지키고 그 백성을 지키기 위해 창설됩니다. 하나님의 군대는 하나님의 나라를 지키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지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여기서 솔직하게 멈추십니다. 설교 준비가 여기까지는 참 좋았는데, 마음속에 올라온 질문 하나 때문에 녹화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을 고민하셨다고요. “하나님의 군대가 지키신다는데, 왜 우리는 그 말도 못 할 고난과 역경을 당하며 사는가?” 사업 실패로 공들여 쌓은 재산을 순식간에 잃고, 병에 걸려 건강을 잃고,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과 자녀를 잃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군대가 나를 지킨다”고 그렇게 쉽게 설교할 수 있겠느냐고, 날기새 가족들이 그걸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차라리 이 본문을 건너뛰고 다른 말씀을 설교할까 하는 데까지 생각하셨다고 하십니다.
그 답으로 목사님이 붙드신 것은 선악과였습니다. 우리 삶에 나타난 모든 죽음과 고통과 아픔과 슬픔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하나임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아예 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죄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는 그 자리에서 결국 우리를 지키고 구원해 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군대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자신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왜 하나님이 마하나임이신데 저는 암에 걸렸습니까?” 그때 마음에 주신 대답이 이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너 죽었니? 그것 때문에 멸망했니?” 수없이 많은 절망을 겪었지만 다 뚫고 여기까지 왔고, 내 지혜와 힘만 의지했다면 천 번은 더 죽었을 것이라고. 그래서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는 찬송이 고백이 됩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죽음이 끝이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해 아픔도 슬픔도 없는 영원한 나라를 얻게 하셨다는 데서 설교는 마칩니다.
내게 남은 것
일하면서 가장 흔들릴 때는 실패한 순간이 아니라, “지킨다고 하셨는데 왜 이 일이 나에게?” 하는 질문이 올라올 때입니다. 오늘 설교가 고마운 것은 목사님 자신이 그 질문 앞에서 녹화를 못 하고 몇 시간을 고민하셨다고 먼저 말해 주신다는 점입니다. 신앙은 질문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질문을 품은 채로 계속 걸어가는 것이라는 걸 봅니다.
그리고 답이 “그래서 너 죽었니?”라는 것. 지키심은 고난이 오지 않게 막아주는 방식이 아니라, 고난을 통과하고도 내가 여기 서 있게 하는 방식으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지나온 위기를 돌아보면 내 실력으로 버텼다고 말하기 어려운 구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 구간을 ‘운’이라 부르지 않고 마하나임이라 부르는 것, 그게 오늘의 믿음입니다.
또 하나는 돈의 한계입니다. 야곱은 재력가였지만 그 돈으로 에서 앞의 불안을 하나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통장 잔고가 주는 것은 편안이지 평안이 아니라는 말씀 앞에서, 내가 무엇을 쌓아 불안을 덮으려 하는지 점검하게 됩니다. 편안을 늘리는 일에는 열심이면서 평안을 주시는 분과의 시간은 미루고 있지 않은지.
오늘의 기도: 지키심이 보이지 않는 날에도, 여기까지 온 것이 은혜였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 His CCM 기도 피아노 (24시간 라디오): https://www.youtube.com/live/qUnV1Q3frB4
- 앨범 «Grace Piano Prayer»: https://open.spotify.com/artist/6HOuDJojMSQHSHzIOt83sn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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