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기새 김동호 #2263 — 경쟁하되 나중 온 사람을 살피라

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63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30장 1~8절 — 아들을 낳지 못한 라헬이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하고 조릅니다. 야곱은 성을 내며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대답합니다. 결국 라헬은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들여보내고, 태어난 아들에게 ‘단'(억울함을 풀어 주심), 둘째에게 ‘납달리'(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먼저 한 집안의 공기를 보여 주십니다. 야곱은 라헬을 더 사랑했고, 사랑받지 못한 레아는 고통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이 그 레아에게 먼저 아들을 주셨고, 레아는 그 아들의 이름을 시므온 — ‘보라 아들이라’ 로 지었습니다. 그 이름은 누가 들으라고 지은 이름이었을까요. 동생 라헬이었습니다. “봐라, 나 아들 낳았다. 너는 아들 없지?” 이름 하나에 그런 심보가 들어 있었습니다. 억울한 라헬은 시녀를 통해 아들을 얻고 ‘단’, 곧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풀어 주셨다”라고 응수했고, 다음 아들에게는 아예 ‘납달리’, “내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름으로 서로를 찌른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바로 며칠 전 함께 본 장면을 나란히 놓으십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 처음 갔을 때, 우물가에 양 떼가 벌써 세 떼나 와 있었지만 먼저 온 목자들이 우물 뚜껑을 열지 않고 마지막 오는 목자까지 기다렸다가 나중 온 사람도 물이 모자라지 않게 공평히 나누어 먹였던 장면입니다. 라헬과 레아가 연출한 집안 풍경은 그와 정반대였습니다. 시기하고 원망하고 질투하고 경쟁하고, 사람 깔보고 업신여기는 집. 소득이 높아지고 물질이 풍성해도 그런 마음으로 살면 가정도 교회도 직장도 지옥 같은 환경이 된다고 하십니다.

왜 우리는 그렇게 경쟁할까요. 승자독식, 약육강식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간 사람이 다 먹고 나중 가면 먹을 것이 없으니 죽으라고 달립니다. 약하면 먹히니 강자가 되려고 고지를 정복하려 합니다. 목사님은 아마존 원시림 파괴 다큐를 보신 이야기를 하십니다. 개발하러 들어간 선진국 사람들이 원주민을 학살했는데, 그 방법이 잔인하고 비열했습니다. 천연두 환자의 옷을 나눠 주는 척해서 감염시켜 죽이고, 살아남은 이들은 목에 쇠사슬을 걸어 노예로 삼고, 고무액 할당량을 못 채우면 채찍질하고 손가락을 잘랐습니다. 그렇게 해서 누구는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보면서 분노와 비참함을 느끼셨고, “저 사람은 정말 지옥 가도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심보가 우리에게는 없을까요. 모양만 좀 근사할 뿐, “네가 게을렀으니 물 못 마시는 게 당연하다”고 치부하며 사는 세상 아니냐고 물으십니다.

그렇다면 경쟁하지 않는 게 답일까요. 목사님은 요즘 즐겨 보시는 ‘자연인’ 프로그램을 꺼내십니다. 속세를 떠나 약초 뜯고 농사 지어 자급자족하며 욕심 없이 사는 모습이 훌륭해 보이지만, 그것이 인간이 살아야 할 궁극적 모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 한 사람은 행복하겠지만 세상을 위해 하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뜻밖의 말을 덧붙이십니다. 승자독식하며 남 발 밟고 사는 사람과 자연인은 똑같이 이기적이라고. 나만 행복하면 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고지’입니다. 92년 코스타 첫 설교가 “고지를 정복하라”였고 그 한 편으로 고지론자가 되셨다는 이야기와 함께, 세상의 정복과 성경의 정복이 다르다고 못 박으십니다. 세상의 정복은 승자독식이지만, 땅을 다스리라는 말씀은 저들을 잘 보살피고 먹이고 입히고 살리라는 뜻입니다. 정복함은 섬김이고, 다스림은 보살핌입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복의 근원이 될지라”이고, 5천 명 분을 혼자 깔고 앉아 먹는 사람이 아니라 5천 명을 먹이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 역시 싸우라는 말이지만, 방식이 선이어야 하고 목적이 섬김이어야 합니다. 로마서 15장 1절 —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치열하게, 선의로, 정직하고 의롭게 이기고, 이긴 자가 진 자의 아픔을 보살피는 것. 그것이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뒹구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만약 라헬이 언니의 출산을 자기 아들 낳은 것처럼 축하해 주고, 레아가 아이 없는 동생을 위해 함께 아파하며 기도해 주었다면 그 집은 얼마나 아름다웠겠느냐고 하십니다. 마른 떡 한 조각으로도 화목한 것이 육선이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낫다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내게 남은 것

일하는 자리에서 가장 무서운 건 실적표가 아니라 이름 짓는 마음이었습니다. 레아는 아들 이름을 “보라 아들이라”로 지었습니다. 성과에 남을 찌르는 메시지를 심은 것입니다. 나도 잘한 일을 보고할 때, 순수하게 기쁜 건지 누구 들으라고 하는 건지 정직하게 살펴야 했습니다. 같은 성과에 ‘보라 아들이라’가 붙으면 팀이 지옥이 되고, 축하가 붙으면 그 자리가 우물가가 됩니다.

또 하나는 도망이 답이 아니라는 것. 경쟁이 지겨워질 때 마음속에 ‘자연인’이 떠오릅니다. 다 놓고 조용히 나만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 그런데 목사님은 그것도 이기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승자독식도 이기심, 은둔도 이기심 — 둘 다 남을 안 본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그러면 남은 길은 하나입니다. 그 자리에 머물러 선의로, 정직하게 이기고, 이긴 힘으로 나중 온 사람을 살피는 것.

그래서 오늘 실천은 구체적입니다. 우물 뚜껑을 먼저 열지 않는 것. 내가 먼저 왔다고 다 마셔 버리지 않고, 늦게 오는 동료의 몫을 남겨 두는 것. 강한 쪽에 서 있을 때 약한 쪽의 약점을 담당해 주는 것. 듣기만 하는 자가 되지 말고 가정에서, 친척 사이에서, 직장과 교회에서 이 원리를 실천해 화평케 하는 자로 살라는 마지막 권면이 오래 남습니다.

오늘의 기도: 이기게 하시더라도, 그 힘으로 나중 온 사람의 몫을 지키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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