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62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29장 15~20절 — 야곱이 라헬을 얻기 위해 라반에게 7년을 섬깁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7년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7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이 구절이 처음에는 도무지 납득이 안 갔다고 고백하며 시작하십니다. 기다림은 원래 긴 법입니다. 사랑해서 결혼을 기다린다면 오히려 며칠이 7년 같아야 맞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7년을 며칠같이 여겼다고.
목사님이 찾으신 답은 이것입니다. 야곱의 마음은 “너를 얻기 위해서라면 7년이 뭐냐, 나는 70년도 일할 수 있다”였다는 것. 70년도 일할 수 있는데 겨우 7년만 일하라고 하니 그건 며칠밖에 안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바로 이때가 아니었을까 물으십니다. 70년을 일해도 아깝지 않은 상대가 생겼을 때, 사람은 가장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목사님은 조금 쑥스러워하시며 1995년에 쓰신 책 『경주하는 삶이 아름답다』를 펼쳐 126페이지, “시를 쓰고 싶은 소원”이라는 글을 읽어 주십니다. 늘 시를 쓰고 싶었지만 시가 너무 어려워 시인을 존경하고 부러워했다는 고백, 그런데 1977년 결혼을 앞두고 두 편의 시가 나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양가의 반대로 참으로 힘든 결혼이었고, 사랑이 아니었으면 벌써 포기했을 어려움이었기에, 그 어려움을 넘어 결혼을 결정했을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고 하십니다.
첫 번째 시 「사랑」은 이렇습니다. “당신으로 인하여 꿈꾸던 내일이 오늘 속에 녹아 오늘과 내일이 내게는 한 날… 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신의 하루를 삽니다.” 두 번째 시 「편지」는 깨끗이 손을 씻고 한 자 한 자 정성껏 편지를 쓰다가, 마지막에 글씨 하나가 잘못 써지자 그냥 두 줄 긋고 이어 쓰면 될 것을 다시 손 씻고 와 처음부터 쓰는 마음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그 글 끝에서, 결혼을 앞두고 아내를 사랑했던 그 사랑으로 아직껏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했음을 부끄러워한다고, 언제쯤 하나님 때문에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될까 하고 적으셨습니다.
목사님은 개인의 기억들도 꺼내십니다. 첫아들을 낳고 버스 정거장에서 집까지 3분이면 될 거리를 1년을 뛰어다녔던 시절, 일곱 시간만 비어도 왕복 여섯 시간 운전해 가서 50분 안아보고 돌아왔던 일, 손녀가 집에 왔을 때 1층에서 17층까지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려 짜증이 났던 시간들. 그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 삶을 가장 불행하게 하는 것은 가난이 아니라 미움,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 다투는 마음이라고.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말라위 이야기가 나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그저 불쌍해서 도우러 갔고, 한 번도 예쁘다는 생각은 못 해봤다고 솔직히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흙먼지 뒤집어쓴 아이들 얼굴을 물티슈로 닦아주고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던 날,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눈이 바뀌었습니다. 그날부터 아이들이 예뻐 보였습니다. 불쌍해서 하는 일도 보람은 있지만, 사랑스러워서 섬길 때의 행복은 비교가 되지 않더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결론은 고린도서 말씀입니다. 사랑은 은사이고, 구하여 얻을 수 있는 은사라는 것. 사랑의 은사를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주실 것이라는 축복으로 마치십니다.
내게 남은 것
일도 결국 같은 자리에서 갈립니다. 마감을 지키기 위해 억지로 붙들고 있는 일과, 이 일이 좋아서 붙들고 있는 일은 같은 시간을 써도 몸에 남는 것이 완전히 다릅니다. 오늘 말씀대로라면 시간의 길이를 결정하는 건 시계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70년도 하겠다는 마음이면 7년은 며칠이 됩니다. 반대로 하기 싫은 일은 한 시간이 하루가 됩니다.
“불쌍해서” 하는 일과 “예뻐서” 하는 일의 차이도 오래 남습니다. 사람을 돕는 일도, 동료를 돌보는 일도, 의무감으로만 하면 보람은 남지만 행복은 남지 않습니다. 눈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눈은 내가 노력해서 만드는 게 아니라 구해서 받는 은사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오늘 미운 사람, 지겨운 일을 두고 “제가 좀 더 참겠습니다”라고 기도할 게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 눈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게 순서겠습니다.
그리고 「편지」의 그 장면 — 마지막 한 글자가 틀렸다고 손 씻고 처음부터 다시 쓰는 마음. 대충 두 줄 긋고 넘어가도 아무도 뭐라 안 할 일에 그렇게까지 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내 일에도 그런 대목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오늘의 기도: 견디는 힘 말고, 사랑할 수 있는 눈을 주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 His CCM 기도 피아노 (24시간 라디오): https://www.youtube.com/live/wGQpgN3GCQI
- 앨범 «Grace Piano Prayer»: https://open.spotify.com/artist/6HOuDJojMSQHSHzIOt83sn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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