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56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25장 27~28절 — 그 아이들이 장성하여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라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라 장막에 거하니,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단 두 절인데, 이 짧은 문장 안에 한 가정의 비극이 이미 다 들어 있습니다.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좋아하시는 말씀이라며 시편 133편으로 시작하십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아론의 수염을 타고 옷깃까지 흘러내리듯,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에 내리듯 — 그리고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형제가 화목하게 사는 그 자리를 그토록 기뻐하셔서, 아예 복을 명령해 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효도를 다시 정의하십니다. 부모에게 잘하는 것도 효도이지만, 가장 큰 효도는 형제끼리 우애하는 것이라고요. 반대로 가장 큰 불효는 형제간에 불화하고 다투고 원수시하는 것입니다. 무녀독남 외아들로 외롭게 자란 자신에게 하나님이 아들 셋을 주셨는데, 올해 49·47·45살이 된 세 아들의 사이가 참 좋아서 그것이 가장 큰 복이라고 고백하십니다.
예화가 참 따뜻합니다. 몇 년 전 아들 하나가 차를 바꿔 드렸는데, 원래 타시던 차(아내가 은퇴할 때 사 준 차)를 어떻게 할지가 남았습니다. 그때 둘째가 전화해 “아빠, 아빠 차 형 주시는 거 어떠세요?”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달라고 하지 않고 형에게 양보한 그 한마디가 그렇게 감사했다고요. 미안한 마음에 막내에게 메일을 보내니 “아빠, 나는 형이 좋은 차 타는 거 좋아요. 형이 나한테 얼마나 잘해 주는데요“라는 답이 왔습니다. 연년생인 둘째가 형에게 꼭 존댓말을 하고 존경한다고 말하는 것이 어떤 땐 징그럽기까지 하지만, 부모로서는 그보다 감사한 일이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다 목사님은 오늘 본문을 읽으며 “사상스러운(새삼스러운) 생각”을 하나 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왜 에서와 야곱은 그토록 사이가 좋지 않았을까? 아이들 책임도 크지만, 부모의 책임도 있었구나 하는 것입니다. 이삭이 에서를 사랑한 이유는 조금 이기적입니다 — 고기를 좋아하는데 에서가 사냥해 자꾸 갖다 주니까. 리브가는 장막에 있는 야곱이 곁에 붙어 있으니 더 사랑스러웠겠지요. 아버지는 큰아들만, 어머니는 둘째만 사랑하는 집에서 야곱도 아버지 사랑이 고팠을 것이고, 에서도 엄마 사랑이 고팠을 것입니다. 그러니 형제 사이가 좋아질 리가 없습니다. 불화의 씨앗은 성숙하지 못한 부모의 편애였습니다.
목사님 자신의 고백도 솔직합니다. 큰아들이 태어났을 땐 버스에서 내려 3분 거리를 1년 동안 뛰어다니셨답니다. 아이가 보고 싶어서요. 그런데 둘째가 태어났을 땐 뛰어지지가 않더랍니다. 그래서 둘째와 셋째가 차별을 느끼지 못하도록 인위적으로, 의식적으로 노력하셨다고요. 형 옷과 신발을 물려 입히지 않은 것도 그래서입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형은 늘 새것, 나는 늘 헌 것”이 아이의 정신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따지면 물려 입히는 게 맞지만 아이들은 그걸 납득하지 못합니다. 납득시키려 하지 말고, “엄마 아빠는 형도 사랑하지만 나도 똑같이 사랑하시는구나”를 느끼도록 훈련해야 한다는 말씀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가정 밖으로 넓어집니다. 사람은 같은 고향이라고 편들고, 같은 학교 출신이라고 편들고, 나를 좋아한다고 편들고 싫어한다고 편을 가릅니다. 그래서 세상에 갈등이 많습니다. 목회하실 때도 내 편을 잘 들어 주는 장로님과 늘 반대하시는 장로님이 계셨는데, 인사할 때 내 편에게 좋은 자리를 주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애쓰셨다고 합니다. 막내가 신학대학원을 졸업할 때 어디에도 전화 한 통 하지 않으신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아빠가 전화하면 너는 어디든 가겠지만, 너 같은 아버지 없는 동기생들은 어떻게 임지를 정하냐. 공평하게 이력서 들고 다니면서 해 봐라.” “공평이 무너지면 사랑도 무너집니다.” 하나님을 공의와 사랑으로 고백하듯, 공의와 사랑은 함께 있어야 둘 다 삽니다.
내게 남은 것
직장에서도 똑같습니다. 내 말을 잘 들어 주는 사람,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에게 좋은 일과 좋은 자리를 주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게 올라옵니다. 심지어 “합리적”이라는 이름까지 붙일 수 있습니다. 손발 맞는 사람과 일하는 게 효율적이니까요.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 자연스러움이 결국 팀 안에 불화의 씨앗을 심는다고 말합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고 자꾸 반대하는 사람에게도 공정하게 자리를 주려고 “굉장히 의도적으로 노력했다”는 목사님의 표현이 오래 남습니다. 공평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인위적으로, 훈련해서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납득시키려 하지 말라”는 대목입니다. 논리로는 내 인사가 공정하다고 설명할 수 있어도, 상대가 차별을 느끼고 있다면 그 설명은 소용이 없습니다. 아이가 헌 신발을 신으며 느끼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공평은 내 기준이 아니라 상대가 느끼는 것까지 책임지는 일이더군요. 저울추는 가만 두면 늘 한쪽으로 기웁니다. 다림줄을 세워 두고도 기울어지는 게 사람이니, 매일 다시 맞춰 보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시편 133편의 약속을 붙듭니다. 하나님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그 자리에 복을 명하셨습니다. 내가 있는 가정과 팀에서 편 가르지 않고 공평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 — 그것이 그 자리에 하나님의 평화를 불러오는 길이라는 것.
오늘의 기도: 내 편이라 감싸고 싶을 때, 공평을 지킬 의도적인 용기를 주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 His CCM 기도 피아노 (24시간 라디오): https://www.youtube.com/live/9STrfMdNiws
- 앨범 «Grace Piano Prayer»: https://open.spotify.com/artist/6HOuDJojMSQHSHzIOt83sn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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