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기새 김동호 #2214 — 복의 통로가 되는 부자

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14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13장 1~2절 —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성경은 짧게 한 줄을 덧붙입니다. “아브라함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오늘 방송이 두 번째 녹화라는 이야기로 시작하십니다. 마이크를 책상에 놓고 찍는 바람에 품질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찍는다고, 목소리도 시원치 않은데 한 번 연습하고 다시 찍으니 조금 더 좋은 날기새가 되지 않겠느냐고 웃으십니다. 그 소소한 고백부터가 오늘 설교의 분위기를 미리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본론은 아브라함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릴 만큼 큰 믿음의 사람이었던 그를 두고, 오늘 본문은 뜻밖에도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아브라함은 큰 부자였습니다. 여기서 목사님은 오래전에 쓰신 『깨끗한 부자』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호불호가 갈리고 논쟁을 많이 불러일으켰던 책이고, 하도 비판하시는 대학 교수님이 계셔서 기독교 방송에서 카메라를 걸고 공개 토론까지 했다고 하십니다. 그때 그 교수님의 공격적인 질문이 이것이었습니다. “깨끗한데 어떻게 부자가 됩니까?” 부자는 깨끗할 수 없고, 깨끗하고 바르게 살려면 가난을 각오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진 분이었다는 겁니다. 목사님은 그 생각에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보셨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의 짧은 문장 안에서 하나를 짚어내십니다. 그 가축과 은과 금의 풍성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생각해보면 그 시대에 큰 부자로 살려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는 안 되었습니다. 자기 텃밭에서도 부자가 될까 말까 한데, 남의 땅으로 들어가면 죽기 십상이고, 겨우 생명을 부지한다 해도 그 땅에서 종이나 노예가 되어 사는 것 외에는 길이 없던 때였습니다. 부자가 되려면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거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의 궁극적 관심은 오직 하나님 말씀을 믿는 믿음이었고, 떠나라 하시면 미련 없이 떠나고 들어가라 하시면 무서운 땅에도 그냥 믿고 들어갔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에게 부자까지 되게 하셨을까요. 목사님의 답은 이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축과 은과 금이 없어도 자기 자신이 복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은과 금에 욕심이 없었고, 그의 욕심은 오직 믿음뿐, 하나님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자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하십니다. 은과 금에 욕심이 많은 부자는 세상의 모든 돈과 복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사람입니다. 그것을 최고의 가치로 알기 때문에 보이는 대로 끌어들이고, 다 먹지 못해 썩히는 한이 있어도 깔고 앉아 있어야 합니다. 오천 명 분을 혼자 깔고 앉아 먹는 사람이고, 그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깨끗한데 어떻게 부자가 됩니까”라는 말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고 인정하십니다. 그러나 부자가 다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처럼 욕심 없는 사람이 부자가 되면, 그 한 사람 때문에 세상이 복을 받습니다.

여기서 목사님 집안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들 셋을 키우면서 사모님이 학용품 같은 것을 큰아이에게 두 몫씩 사 주셨답니다. 동생들은 서운했을 겁니다. 둘째 셋째가 “엄마 연필 떨어졌어요” 하면 사모님은 “형한테 가 봐, 형이 좀 있을지 몰라” 하셨고, 큰아이에게는 미리 동생이 오면 나눠 주라고 부탁을 해두셨습니다. 다행히 큰아들이 그 일을 잘해서, 동생에게는 새 연필을 주고 자기는 쓰던 것을 쓰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생들이 형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고, 그 습관이 자라 큰아들은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군대 간 동생에게 얼마씩 봉투를 만들어 편지와 함께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삼형제 사이가 참 좋다고 하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식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복을 몰아주시는 이유는 나누어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고, 그렇게 될 때 세상이 아름다워집니다.

마태복음 6장,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도 같은 자리에 놓입니다. 의를 구하는 사람, 의에 욕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가축과 은과 금의 풍성함을 더하여 주시지만, 은과 금이 먼저인 사람에게 하나님을 더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목사님은 누차 말씀하신 대로 기독교의 복은 ‘은사’의 개념이라고 다시 정리하십니다. 가축과 은과 금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복이 아니라 은사이고, 은사는 나누고 쓰라고 주시는 것이라 쓰면 늘고 안 쓰면 줄어듭니다. 베드로가 바른 신앙 고백을 했을 때 예수님이 천국 열쇠를 맡기신 것처럼, 아브라함에게 주신 부요함도 일종의 천국 열쇠가 아니겠느냐고 하십니다. 복이 한 사람에게 머무는 게 아니라 그를 통해 흘러가게 하는 것, 그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역할입니다.

내게 남은 것

돈 이야기 앞에서 신앙인은 자주 어색해집니다. 많이 벌면 뭔가 미안하고, 못 벌면 그게 경건인 것 같고. 오늘 말씀은 그 어색함을 깨끗하게 정리해 줍니다. 문제는 액수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블랙홀이냐 통로냐. 다 먹지 못해 썩히면서도 깔고 앉는 손이냐,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주는 손이냐. 하나님은 흘려보낼 사람을 찾아 몰아주신다는 말씀 앞에서, 내 통장과 내 실력과 내 자리가 지금 어느 쪽으로 흐르고 있는지 묻게 됩니다.

일하는 자리에 대입하면 더 선명합니다. 정보도, 기회도, 인맥도, 노하우도 전부 은사입니다. 쥐고 있으면 줄고 나누면 늡니다. 내가 아는 것을 후배에게 넘기면 내 자리가 위태로울 것 같지만, 목사님 큰아드님이 새 연필을 동생에게 주고 쓰던 것을 쓰다가 얻은 게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형제 사이가 좋아졌고, 그것이 집안 전체가 받은 복이 되었습니다. 나눔은 손해가 아니라 관계를 화평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기도의 방향은 “부자 되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맡겨도 흘려보낼 사람으로 저를 봐 주세요”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찾으실 때 보시는 건 그릇의 크기가 아니라 밑이 뚫려 있느냐일 테니까요.

오늘의 기도: 무엇을 맡기시든 제 안에 고이지 않고 흘러가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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