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기새 김동호 #2255 — 구원의 능력과 멸망의 책임

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55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25장 22~23절 — 리브가의 태 속에서 두 아이가 서로 싸웁니다.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여호와께 묻자, 하나님은 답하십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자신의 신학교 시절 이야기로 문을 여십니다. 장로회신학대학을 졸업한 통합측 장로교 목사, 그러니까 요한 칼빈의 후예입니다. 그런데 칼빈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 이중 예정론 — 어떤 사람은 구원받도록, 어떤 사람은 멸망받도록 하나님이 미리 정해 놓으셨다는 교리 — 을 아무리 생각해도 받아들일 수 없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는다는 요한복음 3장 16절과 정면으로 부딪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쓰신 신대원 졸업 논문 제목이 「칼빈주의 예정론 비판」이었습니다. 그때는 예정론을 비판하면 거의 이단시하던 시절이라, 논문 통과는커녕 졸업도 못 하고 쫓겨날 각오까지 하셨답니다. 못 쓰게 하실까 봐 지도교수님 지도도 받지 않고 그냥 써서 내버리셨다는데 — 학교가 그 논문을 그해 졸업 논문상으로 뽑아 주었다고 하십니다. 웃음이 나면서도, 양심에 걸리는 것을 그냥 삼키지 않았던 젊은 신학생의 고집이 오래 남습니다.

논문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칼빈주의는 “구원의 능력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고 인간에게는 전혀 없다”는 전적 무능력을 지키려다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고 노예의지만 있다는 데까지 나아갔습니다. 목사님은 그 오류의 뿌리를 “자유를 능력으로 이해했기 때문” 이라고 짚으십니다. 자유는 능력이 아니라 책임으로 해석해야 문제가 풀린다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 이야기가 이 해석을 단번에 그림으로 만들어 줍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손을 내밀어 건져 주었습니다. 그런데 건져진 사람이 “내가 당신 손 안 붙잡았으면 당신 나 못 구원했어”라고 말한다면 제정신이 아니겠지요. 반대로 누가 손을 내밀었는데 내가 그 손을 거절해서 죽었다면, 멸망의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습니다. 구원의 능력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멸망의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 이것이 논문의 결론이자 오늘 설교의 문장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어떻게 되는가. 칼빈주의자들이 예정론의 근거로 즐겨 인용하는 구절이 바로 이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것 아니냐는 것이지요. 목사님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에서가 야곱을 섬기게 된 것은 에서가 자기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었기 때문입니다. 그 책임은 에서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예지하셨습니다. 아는 것과 정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리고 에스겔 33장의 말씀 — “가령 내가 의인에게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 그 ‘가령’이라는 단어가 모든 것을 말해 준다고 하십니다. 살리라 하신 말만 믿고 죄를 행하면 그 죄 중에서 죽습니다. 구원과 멸망은 못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이 가장 목사님답습니다. “그럼 예정론을 믿은 사람은 지옥 갔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해석은 달랐어도 마음의 중심 — 구원의 능력이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있다는 고백 — 은 똑같기 때문입니다. 틀렸으면 하나님이 머리 한 대 쥐어박으시며 “김 목사, 네가 잘못 알았어” 하시면 되는 일이라고요. 교리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는 당부로 맺으십니다. 다만 성경을 아전인수로 끌어다 쓰는 일만은 늘 조심하자고 하십니다.

내게 남은 것

자유는 능력이 아니라 책임이다. 이 한 문장이 일터에서도 그대로 쓰입니다. 재량이 주어졌다는 것은 내가 대단해졌다는 뜻이 아니라, 결과를 내가 지겠다는 뜻입니다. 잘된 일은 “내가 붙잡아서 됐다”고 공을 챙기고, 잘못된 일은 “환경이 그랬다”고 책임을 넘기는 게 사람의 기본값인데, 오늘 말씀은 정확히 그 반대로 계산하라고 합니다. 공은 내 것이 아니고, 책임은 내 것이다.

그리고 판단이 두려운 날에 대한 답도 있었습니다. 상담 시간에 “양심적으로 하나님 뜻이라 믿고 했는데 아니면 어떡하냐”고 물은 분에게 목사님이 하신 대답 — 양심에 반듯이 서서 결정하고 행동했으면, 맞으면 맞아서 좋고 틀려도 하나님이 바로 고쳐 주실 테니 크게 걱정할 것 없다. 일하는 사람에게 이보다 든든한 말이 있을까 싶습니다. 확신이 없어서 결정을 미루는 날이 많은데, 완벽한 확신이 아니라 정직한 양심이 결정의 기준이라는 것.

또 하나. 자기 생각을 증명하려고 성경을 끌어다 쓰지 말라는 경고는, “저라고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겠습니까”라는 자기 고백과 함께 왔습니다. 내 결론을 정해 놓고 근거를 모으는 습관 — 회의실에서도 매일 하는 짓입니다. 텍스트가 무엇을 말하는지 먼저 듣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기도: 구원의 공은 주께 돌리고, 제 몫의 책임은 제가 지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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