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15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13장 1~2절 —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어제에 이어 같은 본문을 한 번 더 붙드십니다. 믿음의 조상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는 이 한 줄이, 가장 실제적이고 중요한 삶과 신앙의 문제를 건드리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오늘 아브람의 재산 이야기를 빌립보서 4장 12절로 받으십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여기서 목사님이 붙잡으시는 지점이 아주 정확합니다. 바울은 풍부와 궁핍을 둘 다 긍정적으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보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풍부만 인정하고 궁핍은 부정하는 것입니다. 돈 많으면 “잘 사는 사람”, 돈 없으면 무조건 “못 사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심지어 가난은 예수를 잘 못 믿어서, 복이 없어서 그렇게 됐다고 단정합니다. 반대편도 있습니다. 궁핍은 청빈이라며 긍정하고 풍부함은 깨끗지 못한 것, 더러운 것으로 부정하는 태도인데, 목사님은 이런 사람이 교회 안에 뜻밖에 참 많다고 하십니다. 『깨끗한 부자』를 쓰셨을 때 어느 교수님이 “깨끗한데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는 일화가 그 증거입니다. 그분은 부요함 자체를 이미 더러움으로 단정한 것이지요. 하지만 바울이 부자 되는 것을 깨끗지 못한 일로 여겼다면, “나는 풍부에 처할 줄 안다”는 말은 결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네 종류의 사람을 나누십니다. 부자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풍부에 처할 줄 아는 부자와 처할 줄 모르는 부자. 겉모양은 똑같은 부자인데 전혀 다릅니다. 처할 줄 모르는 부자는 부자로 사는 것 자체가 삶의 궁극적 목적인 사람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려 하고, 자기 부를 과시하고, 가난한 사람을 깔보고 업신여기고 갑질하고 착취해서 부만 쌓습니다. 목사님은 이런 사람을 두고 “부자는 부자인데 못 사는 부자“라고 부르십니다. 스스로는 잘 산다고 착각하지만 부자 노릇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엔 이런 못 사는 부자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고 하십니다.
반면 풍부에 처할 줄 아는 부자도 분명히 있습니다. 자기 소유를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삼지 않는 사람, 그것을 복으로만 여기지 않고 도리어 은사로 여겨 잘 사용하려는 사람, 나누고 베풀고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요함을 자랑이 아니라 책임으로 생각하는 사람. 부자이면서 동시에 잘 사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가난에도 똑같이 두 종류가 있습니다. 비천에 처할 줄 모르는 사람은 무조건 세상 탓만 하고, 부요한 사람을 다 도둑놈으로 매도해서 자기를 정당화하고, 자신의 가난을 곧바로 불행으로 단정합니다. 그러나 비천에 처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해도 당당하고, 자존감이 높고, 마음이 따뜻하고, 남을 시기하거나 원망하거나 매도하지 않습니다. 남 잘된 일에 박수를 칠 줄 압니다. 그러면 가난함도 훌륭함이 되고, 가난한 삶도 근사한 삶, 정말 잘 사는 삶이 됩니다. 목사님은 못 사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하십니다 — 비천함 때문에 못 사는 게 아니라, 비천에 처할 줄 모르는 그 무지 때문에 못 산다는 것.
그리고 그 일체의 비결을 무엇으로 배우느냐, 그게 믿음이라고 하십니다. 예수 믿는다고 다 부자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다고 다 가난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부자 되는 것만이 목적이 되면 복이 나에게 흘러들어오기만 바라고 흘러나가기는 원치 않으니 잘 사는 사람이 되기 어렵습니다. 부하면 어리석은 부자처럼 “내 영혼아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기자” 하지 않고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로 살고, 혹 가난한 때가 있어도 밝고 당당하고 따뜻하게 살아 “저 사람은 어떻게 가난한데 저렇게 행복할까” 소리를 듣는 것 — 그것이 선한 영향력이라고 하십니다.
내게 남은 것
일하는 자리에서 나는 사람을 통장 잔고로 줄 세우는 데 너무 익숙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자를 부러뜨립니다. 질문이 바뀝니다. “얼마나 가졌나”가 아니라 “가진 것에 처할 줄 아는가”입니다. 많이 벌었는데 그것이 유일한 목적이 되어 사람을 깔보게 되었다면, 나는 성공한 게 아니라 못 살게 된 것입니다. 반대로 지금 형편이 어려워도 남 잘된 일에 진심으로 박수를 칠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마음에 걸린 대목은 “복이 아니라 은사”, “자랑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표현이었습니다. 능력도 자리도 수입도 결국 내 안에 고여 있으라고 주신 게 아니라 흘려보내라고 주신 통로라는 뜻입니다. 흘러들어오기만 바라고 흘러나가기는 아까워하는 순간, 그것은 복이 아니라 짐이 됩니다.
그리고 반대 함정도 조심하려 합니다. 잘되는 사람을 보며 “저 사람 뭔가 깨끗하지 않겠지” 하고 속으로 매도하는 것 — 그건 청빈이 아니라 시기이고, 목사님 말씀대로 생사람 잡는 일입니다. 부해도 잘 살고 가난해도 잘 사는 것, 그 일체의 비결을 믿음으로 배우고 싶습니다.
오늘의 기도: 많이 가져도 적게 가져도, 그 자리에 처할 줄 아는 사람 되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 His CCM 기도 피아노 (24시간 라디오): https://www.youtube.com/live/9STrfMdNiws
- 앨범 «Grace Piano Prayer»: https://open.spotify.com/artist/6HOuDJojMSQHSHzIOt83sn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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