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53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24장 42~48절 —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배필을 구하러 가서 우물 곁에서 기도한 내용을, 리브가의 집에 돌아와 그대로 되짚어 이야기하는 대목입니다. “내가 묵도하기를 마치지 못하여 리브가가 물항아리를 어깨에 매고 나와서” —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응답이 걸어 나왔습니다.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개인적인 이야기로 문을 여십니다. 본인은 27살에, 큰아들은 26살에, 막내는 28살에 결혼했는데 둘째만 유독 늦어 38살에 결혼했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결혼 얘기만 나오면 “자기가 알아서 한다”며 도망치듯 입을 막았고, 애가 탄 사모님은 성경 삼독을 작정하며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다 이독을 시작하던 무렵, 바로 오늘 이 본문이 새삼스럽게 마음에 와닿더랍니다.
종 엘리에셀의 기도가 그토록 지혜로웠던 이유는 조건 때문입니다. “내가 물을 좀 달라 할 때, 나에게만 주지 않고 약대에게도 물을 주는 여자면 하나님이 정하신 사람인 줄 알겠습니다.” 목사님은 이 조건의 무게를 이렇게 풀어 주십니다. 사람에게 물 한 그릇 떠 주는 거야 그렇다 쳐도, 낙타가 물을 얼마나 많이 먹습니까.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도 아니고 깊은 우물에서 힘들게 두레박질해 길어 올려야 하는 물입니다. 그것도 청하지도 않았는데 낙타에게까지 마시게 하는 사람 — 그런 사람이라면 주인의 며느리로 삼겠다는 기도였습니다.
배필을 구할 때, 며느리나 사위를 구할 때 우리는 보통 무엇을 놓고 기도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집안, 학벌, 직장 — 물론 다 볼 수 있는 조건이지요. 그런데 엘리에셀은 그런 것을 보지 않았습니다. 자기 고통뿐 아니라 남의 고통에도 민감하고, 짐승에게까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 목사님은 이것이 얼마나 지혜롭고 현명한 기준인지 모른다고 하십니다.
이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정리하십니다. 남이 길어 놓은 물도 뺏어 먹는 사람, 남의 것에 손대지 않고 “내 물은 내가 길어 먹는다”며 책임 있게 사는 사람, 그리고 남의 물까지 걱정하고 남의 물까지 길어 주는 사람.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삶은 세 번째, 리브가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가 바로 그것이고,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뒹구는 나라,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나라, 초대교회 오순절 이후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유무상통했던 그 마음이 천국 시민의 마음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재단 시절 이야기가 나옵니다. 탈북민들을 위해 라면 프랜차이즈 가게를 여럿 열어 주었는데, 1년간 생활비를 주며 교육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가게를 내주었습니다. 하루 70만 원 매상이면 2년 안에 투자금 1억 5천을 갚을 수 있는 구조였고, 갚으면 자기 것이 되고 못 갚으면 재단이 책임지는 방식이었습니다. 세종대 근처 라면집 여사장이 실제로 빚을 다 갚고 자기 가게를 만들었는데, “왜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지 아느냐”는 물음에 도무지 모르겠다고 했답니다. 남동생은 “누나, 그거 사기야, 벌면 누나 거고 망하면 자기들 거라니 그런 게 어딨냐” 했다고요. 목사님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 아니냐.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믿어.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사는 거야.” 그 말에 감동하던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하십니다.
마지막은 큰아들 고3 때 이야기입니다. 공부하라는 말을 잘 안 하는 집인데 딱 한 번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성공했다는 사람 중에 두 종류가 있다. 오천 명분을 혼자 깔고 앉아 먹는 사람과,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 세상은 앞사람도 잘 산다고 하지만 그는 그냥 부자일 뿐이다. 잘 사는 사람은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이다.” 기독교의 복은 “너 잘 먹고 잘 살아라”가 아니라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라는 것입니다. 다음 날 아들 책상 앞에는 이런 글이 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공부해서 남 주자. 복의 근원이 되자. 그리고 아버지가 하지도 않은 한 줄이 더 붙어 있었습니다. 최상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자.
내게 남은 것
일터에서 저는 대체로 두 번째 사람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남의 것 넘보지 않고 내 몫은 내가 감당한다는 태도. 그게 꽤 괜찮은 직업윤리라고 여겼는데, 오늘 말씀은 거기서 한 칸 더 가라고 합니다. 청하지도 않은 낙타의 목마름까지 눈에 들어오는 사람. 내 일만 깔끔히 끝내는 사람이 아니라, 옆자리의 짐과 뒷사람의 갈증까지 계산에 넣는 사람. 두레박질 몇 번 더 하는 그 수고가 결국 하나님이 사람을 알아보시는 표식이었습니다.
성과와 실력을 쌓는 이유도 다시 정리됩니다. 공부와 능력은 오천 명분을 혼자 깔고 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천 명을 먹일 능력을 갖추기 위한 것이라는 말. 부자와 잘 사는 사람은 다르다는 구분이 오래 남습니다. 탈북민 라면 가게 이야기처럼, 망하면 내가 지고 잘되면 저 사람 것이 되는 계산법은 세상 눈에는 사기 같지만 하나님 나라의 셈법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볼 때의 기준도 바꿉니다. 함께 일할 사람, 곁에 둘 사람을 고를 때 스펙보다 먼저 볼 것 — 남의 아픔에 마음이 가는가. 짐승에게까지 따뜻한가. 그 한 가지를 놓고 기도한 사모님의 기도가 응답되어 좋은 며느리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오늘 제 기도 제목도 다시 쓰게 만듭니다.
오늘의 기도: 내 물만 긷지 않고, 청하지 않은 낙타의 목마름까지 보는 눈을 주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 His CCM 기도 피아노 (24시간 라디오): https://www.youtube.com/live/9STrfMdNiws
- 앨범 «Grace Piano Prayer»: https://open.spotify.com/artist/6HOuDJojMSQHSHzIOt83sn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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