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기새 김동호 #2227 — 해석하지 말고 그대로 믿는 믿음

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기새 #2227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16장 1~2절 — 어제 읽었던 본문을 한 번 더 읽습니다. 사라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애굽 사람 여종 하갈이 있었습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그리고 성경은 한 문장을 덧붙입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말을 들으니라.”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이 지점을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을 이제 더 이상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한계까지 도달한” 자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사라는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다”고 단정적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목사님은 이것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의 말이 아니었다고 하십니다. 사라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말씀 그대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을 뿐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시작한 일이 ‘해석’ 입니다. 그것도 믿지 않으려고 하는 해석이 아니라, 어떻게든 믿어보려고 하는 해석이었습니다. 자녀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큰 뜻은 믿는다, 그런데 그 자녀가 꼭 내가 낳은 자식이어야 하는가, 양자여도 되지 않는가, 종이 낳은 자식도 내 자식이니 그렇게 대를 이으면 하나님의 축복이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생각으로 합리화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때가 아브라함 일흔다섯 살, 지금은 여든다섯 살. 일흔다섯에도 믿기 어려웠는데 그래도 믿어드렸고, 그 후로 10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문제는 그다음 한 줄입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말을 들으니라.” 목사님은 이게 매우 중요하다고 짚으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이 아니라 사라의 말을 듣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이런 믿음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한계에 이르러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식과 법을 고집하는 믿음. 넘어지고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일단 도전해 보아야지, “합리화해도 되고 해석해도 된다”고 생각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점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완전한 말씀인데, 지금 아브라함과 사라는 거기서 한 점을 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제의 표현이 다시 나옵니다. 인간의 지혜는 완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합니다. 말씀대로 살면 완전연소라 그을음이 없고 공해가 없고 사이드 이펙트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생각과 합류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하갈을 통해 낳아도 아브라함의 씨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었고, 아들을 얻자마자 곧바로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뭐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합리화는 절대로 하면 안 된다, 언제나 똑바로 가야 한다고 목사님은 못 박으십니다. 이해가 되면 되는 대로 믿고, 이해가 안 되면 그냥 믿는 것이지, 거기에 내 해석을 얹기 시작하면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완벽한 축복에는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목사님은 하갈의 태도를 하나 더 공부하고 가자 하십니다. 사실 문제는 하갈에게서 터져 나왔습니다. 하갈은 나름대로 은총을 받은 셈이었습니다. 자녀가 없는 집에 대를 이어 줄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럴 때 더 조심하고 겸손했어야 하고, 임신하지 못한 여주인 사라의 심정을 살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임신한 것을 안 순간부터 주인을 깔보고 멸시했고,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원망하면서 가정에 분란이 일어났습니다. 목사님은 바울의 고백을 인용하십니다 — 부한 데도 처할 줄 알고 비천한 데도 처할 줄 안다. 하갈은 비천한 종에서 아브라함의 아내가 되는 부한 데 처했는데, 처할 줄을 몰랐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는 말씀이 바로 그런 일입니다.

내게 남은 것

오늘 가장 아픈 대목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해석이 불신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자기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믿어드리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일하면서 제가 하는 타협도 대개 그렇습니다. 원칙을 버리자는 게 아니라 “이 정도는 취지에 맞잖아”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 점 빼고, 조금 구부리고, 재해석하고. 그런데 목사님 말씀대로 조금이라도 구부리면 그만큼, 아니 반드시 큰 문제가 생깁니다. 그 그을음은 나중에 내가 감내해야 할 몫으로 돌아옵니다.

하갈 이야기도 남습니다. 조금 잘되면, 조금 부하게 되면, 조금 성공하면 남을 깔보고 업신여기는 마음 — 목사님은 “우리에게도 하갈의 심보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갑자기 주어진 축복을 처할 줄 몰라서 스스로 트러블 메이커가 되는 일. 높아질수록 더 겸손하고,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고 더 낮아져 섬길 때 세상이 좋아진다는 말씀 앞에 오늘 제 태도를 점검합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마지막에 하신 말이 오래 남습니다. 성경에서 정말 배워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가” 라는 것. 이럴 때는 어떻게 살고 저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찾아내고, 그대로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노력 — 오늘 하루가 그 발버둥이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자리에서도 구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믿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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