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기새 김동호 #2226 — 믿을 수 없을 때도 믿으라

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26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16장 1~6절 — 사래가 여종 하갈을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주고, 하갈이 임신하자 여주인을 멸시하고, 사래는 하갈을 학대하고, 하갈은 도망합니다. 그 시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아브라함의 나이부터 짚으십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은 75세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약속은 자손의 약속이었습니다. 네 자녀가 바다의 모래같이 하늘의 별같이 많아지고 큰 민족을 이루리라. 그런데 그 약속은 그때도 이미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약속이었습니다. 자식을 낳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약속을 하시고도 십 년을 잠잠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입니다.

목사님은 여기서 질문하십니다. 하나님은 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까지 아브라함을 몰아가셨을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축복이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다른 방법으로 온 것인지 헷갈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하나님이 아니시면 설명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다른 길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완벽한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라 하셨을 때, 목사님 마음에 걸린 단어는 ‘지극히’였다고 하십니다. 끝의 끝에 있는 상급,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줄 수 없는 상급. “나 하나님이야. 네가 받은 축복은 나 아니면 줄 수 없어.”

그러다 사래의 입에서 나온 말이 오늘의 전환점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하나님은 분명 허락하시고 약속하셨는데, 사래는 십 년을 기다린 끝에 “허락하지 않으셨다”로 결론을 내려버립니다. 목사님은 사래를 탓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믿음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고 지적하십니다. 행함으로 구원 얻는 건 어렵고 믿음으로 얻는 건 그냥 “믿습니다” 말만 하면 되는 줄 알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믿음이라는 겁니다. 75세에도 믿기 어려웠는데, 약속하고 십 년을 안 지키시고, 결국 이삭은 100세에 태어납니다. 그 사이에도 믿으라 하시는 하나님. 그 믿음이 어떤 행함보다도 어렵기에,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십니다.

믿을 수 없게 된 사래는 편법을 씁니다. 그 시대에 여종은 그 자체가 주인의 소유였고, 여종이 낳은 자식도 주인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니 사래의 계산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내게는 안 주셨으니, 내 종을 통해 낳으면 그게 내가 낳은 것이다. 목사님은 시편 1편을 인용하십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사래의 것은 악인의 꾀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꾀는 꾀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나름대로 조금 비틀어 재해석한 것입니다. 앞서 아브라함이 엘리에셀을 양자 삼겠다고 한 것도 같은 종류의 재해석, 말씀을 조금 구부려 믿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은 100% 틀린 말이다. 하나님 축복의 서울은 절대로 모로 가서는 갈 수 없다. 인간의 지혜와 꾀도 만만치 않지만 완전하지 못합니다. 불에 비유하면 하나님의 지혜는 100% 완전 연소라 그을음이 없는데, 인간의 지혜는 불완전 연소라 그을음이 남고 부작용이 남고 공해가 남습니다. 문제 하나를 해결해 놓고 그에 못지않은 다른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실제로 사래의 꾀는 곧바로 하갈과 사래의 갈등, 아브라함의 골칫거리를 낳았고, 이삭의 자손과 이스마엘의 자손의 갈등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은 목사님의 첫 담임 목회 이야기입니다. 서른네 살에 부임한 교회에는 예산에 십일조 항목이 없었고, 월정헌금이 주였으며,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뭉뚱그린 ‘기타 헌금’이라는 항목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것을 십일조를 다 내자니 벅차고 안 내자니 체면이 안 서서 적당히 타협한 것으로 보셨습니다. 그래서 첫 연말 당회에서 월정헌금을 없애고 십일조로만 하자고 했더니 장로님들이 병행하자는 절충안을 내십니다. 예산이 줄까 걱정한 것입니다. 목사님의 대답은 “예산이 준다면 내 월급부터 깎자”였고, “이건 회의로 결정할 일이 아니라 부탁하는 것”이라며 고집을 부리셨습니다. 결과는 예산이 도리어 늘었지만, 목사님은 늘어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줄었어도 상관없다고 하십니다. 그 고집이 어디서 배운 것이냐 하면, 바로 오늘 본문의 사래에게서 배운 것이라고요. 높은뜻숭의교회의 여섯 가지 실천 목표 중 하나였던 “하나님의 식과 법을 고집하는 교회”가 그것입니다. 불법은 물론이고 편법도 쓰지 않는다. 아들을 주신다 하셨으면 100살이 되어도 기다린다. 죽으면 죽으리라.

내게 남은 것

가장 뼈아픈 문장은 사래의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다.” 이건 불신앙의 선언이 아니라 십 년치 데이터에 근거한 합리적 결론입니다. 저도 일하면서 이런 결론을 자주 내립니다. 기다려봤는데 안 되더라, 그러니 이 길은 아니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찾자. 그 판단이 너무 합리적이어서 스스로도 그것이 꾀인 줄 모릅니다. 목사님 말씀대로 사래의 것은 악인의 꾀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꾀였을 뿐입니다. 악하지 않은 꾀가 더 무섭습니다. 양심에 걸리지 않으니까요.

그을음 이야기가 오래 남습니다. 인간의 지혜는 불완전 연소라 반드시 그을음이 남는다는 것. 일에서 편법의 진짜 문제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한 뒤에 남는 뒷수습입니다. 하갈은 실제로 임신했습니다. 계획은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멸시와 학대와 도망이 왔고, 수천 년의 갈등이 왔습니다. 성과는 났는데 관계가 망가지고, 숫자는 맞췄는데 다음 해에 청구서가 오는 그 구조를 저는 압니다.

그래서 오늘 붙잡을 말은 ‘고집’입니다. 십일조 항목 하나 때문에 예산이 줄면 내 월급부터 깎겠다던 그 고집. 목사님도 매번 성공하지는 않는다고, 천하의 아브라함도 흔들려서 엘리에셀을 말하고 사래의 말을 들었다고 하십니다. 다만 합리화하지 말고, “사람이 연약해서 다 그런다”고 핑계하지 말고, 넘어져도 또 일어서고 회개하면서라도 다시 도전하는 것. 그것이 오늘 제가 가져가는 전부입니다.

오늘의 기도: 믿어지지 않는 자리에서 계산 대신 고집을 택하게 하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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