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 목사님의 새벽 QT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을 듣고 남기는 묵상 노트입니다.
원 설교: 날마다 기막힌 새벽 #2225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오늘 본문: 창세기 15장 8~11절 — 토요일, 어제에 이어 사흘째 같은 본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은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하고 묻자, 하나님은 3년 된 암소와 암염소와 수양,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말씀의 흐름
목사님은 이 장면의 묘한 어긋남에 먼저 주목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질문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였는데, 하나님의 대답은 설명이 아니라 “제사를 드려라” 였습니다. 근거를 대주시는 대신 제단을 요구하신 겁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거기에 순종했습니다. 이해가 안 갔지만, 아직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았지만, 받을 줄을 믿고 감사의 제사를 올려드렸습니다. 목사님이 반복해서 짚으신 대목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받아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받을 줄 믿고 감사했습니다.
여기서 창세기 앞부분에서 다뤘던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가 다시 소환됩니다. 가인의 제사는 정성 없고 마음 없는 제사여서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고,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마음이 있는 제사였습니다. 목사님의 질문은 우리를 향합니다. 우리는 받은 은혜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인데, 받을 줄 믿고 드린 아브라함과 달리 이미 받아놓고도 가인의 제사를 드리며 사는 것은 아닌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말씀을 인용하시며, 하나님을 믿어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고 하십니다.
이어서 목사님은 창세기 15장에 오래 붙어 다닌 잘못된 해석 하나를 정면으로 바로잡으십니다. 아브라함이 소와 염소와 양은 쪼갰는데 새는 쪼개지 않았고, 그래서 솔개가 사체 위에 내렸고, 그 잘못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자손이 400년 동안 종노릇하게 되었다 — 이런 식의 설교 말입니다. 목사님은 “말도 되지 않는 해석”이라고 잘라 말씀하십니다. 근거는 레위기 1장 17절입니다. “그것의 날개들과 함께 그것을 찢되 둘로 나누지는 말지니라.” 새는 원래 쪼개지 않는 것이 제사법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실수한 것이 없고 법대로 제대로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반박이 이어집니다. 설령 잘못이 있었다 한들, 그것 때문에 400년 종살이를 시키시는 하나님이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신 분입니다. 잘못했으면 장난삼아 머리통 한 대 쥐어박으며 “야, 그거 잘못됐다 다시 해라” 하실 일이지, 사람도 그렇게는 안 합니다. 그러니 15장 뒤에 나오는 400년 예언은 저주가 아니라 언약입니다. 그런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희를 버리지 않고, 애굽은 멸망하고 너희는 구원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다는 약속입니다.
마지막으로 목사님은 남산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높은뜻숭의교회 시절, 사무실이 남산에 있어 점심 먹고 운동 삼아 남산 길을 걷곤 하셨는데, 그때 굿하고 제사하러 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셨답니다. 제물이 정말 엄청났다고 하십니다. 과일 하나, 고기 하나까지 정성껏 준비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저주가 무서워서입니다. 아들이 죽는다, 남편이 죽는다, 사업이 망한다 — 그 공갈이 무서워서 부적 쓰고 굿하고 제물을 바칩니다. 미신 종교의 본질은 저주라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의 제사는 저주를 피하려고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마지막 찔림은 아픕니다. 저주가 무서워 드리는 그들의 제물보다, 은혜에 감사해서 드리는 우리 제물이 더 인색하고 빈약하다면 그것이 부끄러운 일 아니냐.
내게 남은 것
일하면서 감사가 나오는 순간을 돌아보면 대체로 결과가 나온 다음입니다. 계약이 성사되고, 숫자가 맞아떨어지고, 위기가 지나간 뒤에야 “감사합니다”가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 아브라함은 아무것도 손에 없는 상태에서 소와 염소와 양을 잡았습니다. 확인하고 감사한 게 아니라 믿고 감사했습니다. 그 순서 차이가 믿음이라는 걸 오늘 배웁니다. 나는 받은 것에 대해서조차 감사를 잘 못하면서, 받을 줄 믿고 드리는 감사는 얼마나 멀리 있는지요.
두 번째로 남는 건 ‘동기’입니다. 남산의 제물은 크고 아름다웠지만 그 밑에 깔린 건 공포였습니다. 내 성실함의 밑바닥에도 그런 공포가 깔려 있을 때가 있습니다. 안 하면 잘릴까 봐, 뒤처질까 봐, 손해 볼까 봐. 그렇게 움직이면 제물은 커도 마음은 가인의 제사가 됩니다. 저주를 피하려는 노력과 은혜에 감사하는 노력은 겉으로는 똑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세 번째는 성경을 잘못 배우면 하나님을 잘못 아는 데까지 간다는 것. 새를 안 쪼개서 400년 종살이했다는 해석 하나가 하나님을 ‘트집 잡는 신’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목사님은 레위기를 찾아 확인하셨습니다. 흔들릴 때는 소문 말고 본문으로 돌아가는 것, 그게 미혹당하지 않는 길입니다.
오늘의 기도: 받은 뒤에야 겨우 감사하는 저를, 받을 줄 믿고 감사하는 자리까지 데려가 주소서.
함께 들은 음악 🎹
새벽 묵상 시간에 가사 없는 피아노를 낮게 틀어두면 말씀에 집중하기 좋습니다.
- His CCM 기도 피아노 (24시간 라디오): https://www.youtube.com/live/9STrfMdNiws
- 앨범 «Grace Piano Prayer»: https://open.spotify.com/artist/6HOuDJojMSQHSHzIOt83sn
이 글은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채널의 설교를 듣고 쓴 개인 묵상입니다. 전체 말씀은 꼭 원 영상으로 들으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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